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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동안남 Jan 21. 2023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을 탐구하다.

분데스리가의 최고의 외국인 선수, 차두리의 아버지, 한국 축구의 대들보



우리나라 축구팬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다투는 대화가 있다. 박지성? 손흥민? 차범근 중 누가 더 위대한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박지성은 잉글랜드의 최고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리그 우승뿐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우승을 휩쓴 산소 같은 존재였고, 손흥민은 레버쿠젠, 토트넘에서 슈퍼 스타급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의 최고 아이콘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차범근을 이 2명과 견주어 대화하는 것일까? 차범근 그분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정말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사실 부담스럽지만 필자의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해 보겠다. (이 글을 보는 분들께서 비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차범근 선수는 우리나라의 최고 선수였다. 이건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의 이견이 없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독일(당시, 서독)에서 슈퍼스타급 이상의 훌륭한 선수였다. 국내에서는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정되어 맹활약을 했고, 월드컵은 몇 번의 실패를 딛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해서 노장으로서 투혼을 발휘했다. A매치는 100경기 이상을 뛰어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되었다. (센추리 클럽 : 피파가 인정하는 각종 국제 축구 경기 대회에서 100경기를 뛴 선수에게 붙는 칭호이다.)


20대 중반에 이러한 우리나라의 모든 명예를 뒤로 하고. 독일(당시 서독) 분데스리가로 진출한다. 군문제로 커리어가 깎일 뻔했지만 그의 역량은 최고였기에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로 진출해 정말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고, 팀 최초로 UEFA컵을 우승시킨 핵심 선수였다.(준우승은 당시, 독일 최고의 팀은 뮌헨 글라드바흐였다.) 그러한 활약과 공로로 현재 그는 프랑크푸르트 지하철 역에 역대 최고의 레전드 선수로 꼽혀 이미지화되어 있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슈퍼 스타인 오거스틴 제이제이 오코차 선수도 지하철역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는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은 물론이고, 팀의 승리에 혁혁한 공로를 매 경기마다 보여줬다. 그래서 주간 베스트 일레븐에 많이 뽑혔고, 평점에서도 전체 선수 중 3위 안에 들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보여줬다. (당시, 칼 하인츠 루메니게, 케빈 키건, 한스 브리겔, 흐루베쉬, 펠릭스 마가트 등 기라성 선수들이 많았다고 생각해 보면 위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아직까지도 차범근을 차붐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에서 영광을 뒤로하고, 바이에른 레버쿠젠으로 이적한다. 당시, 레버쿠젠은 중하위권의 성적을 내는 약팀이었다. 하지만 그가 입단하면서 팀의 실력은 상승하기 시작했고, 다시 UEFA 결승에 올라가 우승을 시킨다. (아마, 다른 팀에서 2번의 UEFA 우승을 시킨 선수는 차범근을 포함한 현재 9 ~ 10명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그는 2개의 팀에서 전설 아닌 전설이 되어 신화를 남겼다. 그러니 아직도 나이가 많으신 독일 축구 팬들은 차범근을 모두 알고 있고, 위에서 언급한 루메니게뿐 아니라 클린스만, 펠러, 마테우스 등도 그를 존경하고 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뛴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스위스의 슈테판 사퓌자(도르트문트의 전설적 공격수, 1996~1997 도르트문트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시켰음) 선수가 100골 이상을 넣기 전까지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그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에우베르, 아일톤, 피사로, 레반도프스키가 100골 이상을 기록했다.) 그는 300경기 이상 뛰며 98골을 넣었으니, 아마 일찍 진출했다면 최소 130골 이상은 넣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당시 분데스리가는 용병 출전 제한이 있었기에 그의 기록은 가치가 아주 큰 것이다.


그렇게 명예로운 선수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그는 희로애락을 걷는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지도자로 시작했으나 성공을 하지 못했고, 유소년 육성을 위한 축구교실을 만든 후에는 많은 축구 선수를 배출시킨 업적을 이룬다. 그러다가 1996년 12월의 혹독한 우리나라의 축구 치욕을 뒤로하고, 1998 프랑스월드컵 진출을 위한 감독으로서의 지도자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거의 최강급으로 만들어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게 엄청난 독이 되고 말았으니.....


당시, 조추첨에서 우리나라는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 등과 같은 조였다. 당시, 국민들과 언론들은 해외축구가 뭔지를 정말 아예 몰랐다. 필자는 뉴스와 잡지를 많이 보았기에 어느 정도 이 팀들의 실력을 간파해서 최소한 1 무라도 거두면 최상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었다. 그렇게 현실은 1 무 2패. 당연한 결과였다. 차범근 그로서는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외계인 급 역량이 있는 감독도 힘들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지만 당시 대한민국 축구 실력이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당시 프랑스월드컵 우승 확률을 우리나라는 250대 1인가 300대 1로 기억한다. 거의 꼴찌 수준이다.) 그는 불명예스럽게 경질되었고, 현재까지 큰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얻고, 그는 중국으로 가서 지도자 생활을 했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그는 해설자로 등장하였고, 기존과 다른 해설위원들의 스타일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자신을 경질시키게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축구 스타일을 신뢰했고, 4강 신화를 이룬 후배들 모습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그의 가슴속에 맺힌 한이 눈 녹듯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설자로 잘 나가다 다시 수원 삼성에서 감격의 우승을 이뤄냈고, 다시 해설자로 활약하다 지금은 축구 행사에 자주 등장하고, 유튜브 및 여러 매체에 출연해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 차범근 감독에 대한 분석을 요약하며 적었는데도 엄청 많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필자는 배울 점이 많았다.


첫째, 그는 깨끗했다. 그는 현역 시절에 경고를 딱 1장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잉글랜드의 전설 게리 리네커, 스페인의 전설 에밀리아노 부트라게뇨는 선수 시절 단 한 장의 카드도 받지 않았다.) 그러니 얼마나 깨끗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는가? 팀의 승리를 위해 노력한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준 그를 우리는 존경할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둘째, 그의 관용이다. 과거. 프랑스월드컵에서 하석주 선수가 퇴장을 당해 멕시코에게 역전패를 당했을 때, 하석주 선수는 괴로움에 시달렸고, 감독과는 수십 년 동안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도자가 된 하석주는 용기를 내어 차범근 감독과 만났고, 아주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는 당시 방송에서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경기를 치르다 보면 퇴장을 당할 수도 있는데 그걸 가슴에 묻다니......' 그는 하석주 선수를 혼낸 것이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관용을 베푼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더욱 존경할 수밖에....  


셋째, 그는 실력으로 보여줬다. 몇 년 전, 유튜브 방송에서 과거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차범근 감독과 식사를 한 영상을 보았다. 모 선수가 인종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그런 건 신경 안 썼다.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주면 다 이해하니까..... 실력이라... 오로지 실력.... 그렇다.. 그는 고난과 역경을 실력으로 극복했다. 그러니 더욱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차범근 전 선수이자 감독을 분석해 보았다. 너무 많아서 글을 쓰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압축하는 것도 힘들었고, 이 내용이 제대로 구성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이제는 그도 우리나라의 축구 발전을 보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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