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질주한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
사망한 지 약 30년이 지났음에도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라질 최고의 F1 드라이버, 불세출의 사나이, 상냥함 속에 불같은 질주 본능과 뜨거운 열정,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항상 남몰래 도와준 멋진 남자. 이 정도면 F1을 본 사람들은 대략 알 것이다. 아일톤 세나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F1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독일의 미하엘 슈마허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분은 무려 7번을 챔피언십에 오른 독일의 전설적 F1 드라이버였다. 1994~1995, 2000~2004), 이 분 이전에 최고의 드라이버로 칭송받는 분이 아일톤 세나이다. 필자는 아주 어렸을 때, 신문과 뉴스에서 짧게나마 간략하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식이 쌓이면서 그의 활약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가 활약한 1980년대 ~ 1990년대에는 정말 슈퍼급 F1 드라이버들이 많았다. 브라질의 꽃미남 네우송 피케(챔피언십 3번 우승), 프랑스의 교수님이라고 불렸던 알랭 프로스트(챔피언십 4번 우승), 필자가 쓰는 아일톤 세나(챔피언십 3번 우승), 나머지 1번은 케케 로스버그(1982년 챔피언십 1번 우승, 아들인 니코 로스버그도 1번 우승하며 영국의 힐 부자와 함께 영광스러운 업적을 갖고 있음),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불사신 니키 라우다(1984년 우승),
F1의 김흥국으로 불렸던 콧수염의 상징 영국의 나이젤 만셀(1992년 우승) 등 여러 명이 각축을 펼친 말 그대로 슈퍼 스타급 잔치였다. 이런 초호화 선수들과 겨루며 그는 정말 천재가 아닌 신 이상의 실력으로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F1 머신(보통 차라고 생각하시면 됨)을 이끌고, 말 그대로 본능적으로 주행을 했다. 분석은 중요하지 않았고, 스스로 말이다. 그러한 그의 질주는 유튜브에 아주 많이 있으니 구경하시면 된다. 그만큼 그의 드라이버 능력은 출중했다. 그래서 많은 드라이버들이 그의 실력에 감탄했고, 브라질 국민들도 그를 존경했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무려 6번을 1위 한 그의 능력(서킷이라는 다시 말해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모나코 그랑프리는 실제 도로에서 경기를 함)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아직도 이 기록을 깬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이 코스가 얼마나 어렵냐면 전체 차량 중 절반이 탈락할 만큼 힘들다. 유튜브를 보시면 아주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러한, 그의 드라이버 실력 속에 수많은 승리는 당연했고, 다양한 그랑프리에서 그의 활약 속에 F1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물론, 알랭 프로스트와의 경쟁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도 있긴 했지만, 경쟁 없이 스포츠는 이뤄질 수 없는 불가피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만큼 그의 실력과 이슈에 외신들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이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1994년,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실 그 경기를 하기 전에 루벤스 바리첼로(브라질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와 콤비를 이룬 선수)가 사고를 냈고, 그 후에 롤란드 라첸베르거(오스트리아 국적) 선수가 사고로 사망을 하는 등 정말 절망스러운 그랑프리였다. 모두들 포기를 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드라이버로서 경기를 펼쳐야 하는 사명감에 질주를 하다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이 사고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브라질 시민들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국장으로 치렀을 만큼 그의 영향력은 강했다. 오죽하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이 아일톤 세나를 위한 플래카드까지 펼쳤으니, 그의 역량과 마인드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그는 불꽃 튀는 드라이버 실력으로 팬들을 매료시켰고, 수많은 승리를 했지만, 공수래공수거라고 하는 말이 나올 만큼 너무나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근 3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팬들은 그의 드라이버를 영상으로 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아일톤 세나가 신 급의 운전 실력을 보여줬다면, 그의 마음은 천사 급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브라질에서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보면서 항상 가슴 아파했고, 물자를 갖다 줘서 불우한 국민들을 많이 도와줬다. 이를 토대로 그는 재단을 만들었고,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그는 사랑이 많았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만약, 그가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미하엘 슈마허의 7번 우승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실력은 매년 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설로 불리며 영화, 게임 등등 각종 콘텐츠에 그의 이름은 항상 나오고 있다. 필자는 아일톤 세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위대한 인물은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부드러운 면모가 있어야 탄생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승부 속에 냉정함 속에서도 항상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많은 팬들은 아일톤 세나의 질주를 그리워하며, 현재의 F1 드라이버들도 그의 스타일로 멋진 질주를 펼쳐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의 영상을 보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