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주인공인 어린이의 의미?
일필휘지로 남겨는 진정한 어린이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른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아는 척, 모르는 척하다 대화를 통해 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모두들 놀라는 분위기. 이들은 아주 귀여우면서도 시기적절하게 우리의 마음을 느끼도록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 힌트. 영어로는 차일드. 복수형은 칠드런. 정답은 어린이이다.
어린이. 이들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어른들은 이들에게 교육을 받고, 교훈을 얻고, 본받을 점을 느끼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어린이 앞에서는 순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적어보겠다.
우리가 흔히 어린이라는 용어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옛 문헌 즉 17세기 '경민편'이라는 책에 '어리니'라는 옛말이 기재되어 있다. 어찌 보면,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업적이 크다 보니 어린이라는 단어도 그가 만들었다는 오해가 발생했을 수 있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최근 자료를 보니, 위에서 말한 경민편에 적혀있었다.
용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어린이는 분명 우리 어른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누구든 막론하고, 모든 인류는 아이부터 시작해서 노인까지 살아간다. 물론, 중간에 병이나 사고 등으로 일찍 죽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렇게 일생을 보낸다. 따라서 어린이라는 이 시기는 모두 겪게 된다. 따라서 어린이는 어찌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첫 관문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모습과 행동, 언어 그리고 모든 것을 쉽게 흡수한다. 이에 잘못된 환경과 기타 여러 부작용까지 흡수하면서 이것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어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만큼 어른들의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어른들의 행동하다는 점이 어린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린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어린이들도 어른들의 행동뿐 아니라 자기 또래 친구들과의 유대 관계 혹은 미디어를 통한 자신만의 세계관 구축, 그리고 장난감이나 기타 놀이를 통해 얻는 여러 복합적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점이 어른들의 행동 영향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관계끼리 어울리며 나온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기타 사회학 등 여러 유명 서적을 보면, 어른들의 행동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관계에서도 어린이의 역할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어린이들이 자기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곳저곳 방탕하며 사회성을 기르지 않으면, 훗날 큰 영향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것을 좀 더 가다듬기 위해 만든 것이 있으니 바로 교육 시설이다.
교육 시설, 흔히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표현한다. 대개 어린이들의 나이는 응애응애부터 출발해 5~13세 사이라고 필자는 알고 있다. 대개 유치원 입학부터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의 나이대. 그래서 어린이들은 좀 더 가다듬고 사회성을 키우고, 순수한 삶 속에서 훗날 어른으로서의 역할과 지식을 얻고자 교육 시설을 활용한다. 순수함 속에서 어른들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음에도 여러 방면에서 부족한 이들의 교육은 어찌 보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세월에 따라 변하는 만큼 어린이 교육과 시설,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모든 관점이 변하고 있다.
과거의 어린이는 윗사람들 소위 높은 분들에게 교육을 받고, 예절을 배우고, 생활 습관을 익힌다. 농경 사회였던 만큼 집단주의 체제 속에서 어린이들은 개인주의보다는 양보와 협력 등을 배우며 어린이의 역할을 체득하고,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았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어린이들의 관점이 변했다. 개인주의가 되고, 미디어와 IT 보급에 따른 철저한 맞춤식 교육과 지식 및 창의성의 강조인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의 시기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산타는 없다. 혹은 상상 속에 모든 것은 가짜이다처럼....
그러한 복합적이고 복잡한 세상에 우리 어린이들은 여전히 순수함을 갖고 있다. 시기가 아무리 짧아져도 순수함은 가히 상상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순수함 속에 새로운 것을 깨닫고,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힘겨워할 때 어린이들의 응원과 말 한마디가 시너지 효과를 제공해서 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어른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어린이들이 진정으로 순수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생활하도록 우리 어른들은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항상 조심하고, 항상 보호하고, 항상 교육을 시켜야 한다. 공정과 정직한 마음으로 말이다. 이 2가지 없이 무분별한 훈육과 행동은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린이는 어른들의 등불이다. 따라서 항상 어린이들의 마음과 관점을 생각하고, 진지하면서도 어떨 때는 그들의 요구 사항에 맞게끔 행동을 취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강조하신 어린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어른들을 일깨워주고 세상을 비춰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자 행동을 보여주는 것. 이 진정성 있는 의미야말로 21세기 현재까지, 어린이들의 역할은 유효하다. 이 유효성을 우리 어른들이 항상 생각하고, 항상 어린이들에게 보여줘야만이 건전한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린이들은 최소 7년 정도는 그 지위를 유지하고, 질풍노도 혹은 사춘기라는 청소년기를 겪는다. 그 시기에 왔음에도 이들은 어린이 시절의 순수하고, 건전한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 그런 정신이 있기에 올바르게 학교 생활을 유지하고 지낼 수 있다. 적어도 그 정도의 보호만이라도 어른들이 해줘야 할 의무일지도 모른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먹을 것과 장난감 선물, 놀이동산과 동물원 구경 등으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필수가 되었다. 물론,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설문조사에서 어린이들이 어린이날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가족과 오랫동안 보내고 싶은 것'이었다. 노는 것이 아니고, 먹는 것이 아니고, 구경하는 것이 아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그만큼 우리의 각박하고 개인주의적 현실에 묻혀 어린이들도 외로움과 고달픔에 시달린 것이다. 이 어려운 현실 속에 단 하루 만이라도 가족끼리 소통하고, 즐거운 날을 보낸다면 우리 어린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추억하는 가장 멋진 어린이날로 남아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