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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동안남 Jul 02. 2023

34편 : 아빠 회사 야유회에 따라가고 싶은 딸의 전화

아빠 회사에 전화한 딸의 모습에서 느껴본 사회와 조직의 의미를 적어보다.

최근,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모든 것이 허탈에 빠진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 아주 큰 웃음과 희망, 그리고 귀여움과 함께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사람 관계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끔찍한 것이 아닌 깜찍한 사건이었다.


'여보세요. 아빠 야유회 가는데 오빠만 데려가고 저는 안 데려가서 전화하는 거예요.'

'응, 그래, 그러면 아빠에게 이야기해서 너도 야유회 보내도록 알려줄게.'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아주 큰 기쁨이자 잠시 동안 차가웠던 사회 현실이 아주 따뜻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놀러 가고 싶은 여자 아이의 자연스럽고 호소력 짙은 통화에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호랑이 같은 상사 혹은 부장 아니 회장님도......


왜, 우리는 그런 통화에 시간이 흘렀음에도 회자가 되고, 수많은 영상이 돌고, 후기가 남겨져 여전히 긍정적인 뉴스로 소개받는 것일까? 아마, 우리가 그동안 사회생활을 각박하게 생각해서 그러했는 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도 몰라야 하고, 몰라도 알아야 하고, 명령하면 복종해야 하고, 나서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잘한다 싶으면 누군가 가로채서 성과가 사라지고, 도움을 줬다가 오히려 면박당하는 말 그대로 반대의 현상이 많지 않았던가? 또한, 사회라는 틀 속에 조직이라는 2글자는 우리에겐 큰 울타리에 가시밭으로 둘러싸인 답답함 속에서 윗사람을 항상 무서워하고, 무조건 존경해야 하고, 소통보다는 오로지 그들의 행동과 생각,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화 통화를 통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정이 있고, 삶 속에 훈훈함이라는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4명의 자녀를 둔 지금으로 치면 애국자로 불리는 위대한 사람이다. 4명의 자녀뿐 아니라 사랑하는 부인과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 그. 그는 회사의 야유회 행사에 참석하는 조직 구성원 중 한 명이다. 그러다 보니, 참석하는 수에 따른 제약이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도 불가피하게 첫째만 데려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딸이 그것에 아쉬움을 느껴 진정성 있는 논리로 전화 통화를 해서 회사 간부에게 제안한 것이다.


여자 아이는 회사 조직 구성원의 계급이나 업무 과정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순수한 마음으로 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소위 말해 도전 정신으로 전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가면 가는 것이고 아니면 에이 하며 아쉬워했을 것이고......


그런 갈등 속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한 딸, 그러나 전화를 받은 간부는 의외로 침착했고, 여자 아이를 딸처럼 응대해 줬다. 이 부분에서 모든 사람들이 감동하고, 아직 우리나라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근무하는 분의 직원의 자녀가 회사에 전화한다는 것이 상상이 갔을까? 정말, 큰 용기가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회사 간부는 정말 친근하게 응대했고, 우리는 모두 그 회사를 부러워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소규모 회사라서 모든 직원들이 가깝게 지내며 근무한다고 한다. 사실, 중소기업이 적은 인원으로 근무를 하는 시스템인데, 우리에게는 이런 근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는 없는 편이다. 일반화의 오류처럼 말이다. 좋은 회사도 있고, 좋지 않은 회사도 있지만,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소규모로 일하는 회사이다 보니 일 떠넘기기, 윽박지르기, 권위주의, 지나친 야근, 이간질 등 우리가 꽁꽁 숨기는 안 좋은 기업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화 통화는 그 고정관념을 탈피시킨 이정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조직을 딱딱하고, 권위적이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없는 냉혹한 곳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그런 회사들이 많아서 사회적 문제가 늘 거론되고 있고, 다양한 법과 제도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직장 및 사회 문화의 악습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우리는 직장을 다니고 있고, 괴로워하고,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더욱 악순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자 아이의 그 전화 한 통화는 훈훈함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비교가 된 것이다. 우리가 인식했던 중소기업 혹은 작은 사기업의 고정관념이 없는 회사라는 점이 인식되었고, 윗사람의 친근한 대화 스타일은 직원을 올바르게 통솔할 수 있는 인자한 인성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그 여자 아이의 통화를 상사가 모두 들어주었고, 이를 해결하도록 명확하게 지시했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에게는 그 회사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부러움을 안겼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고, 조직 생활을 누린다. 이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삶을 살고 있으며, 그렇게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보낸다. 회사 생활은 형극도 있고, 롤러코스터도 있고, 에베레스트였다가 뒷동산이었다가 다시 화산으로 갔다가 웅덩이로 가는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전화 통화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시원한 음료수였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 아이는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회사의 적극 추천으로 야유회를 다녀왔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다. 간절함과 호소력 짙은 순수한 통화에 거절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그 제안을 거절했다면 그 아이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향후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과 직장 및 조직 생활에 큰 트라우마로 남아 거부감이 컸을 것이다. 순수함 속에 받은 상처는 엄청난 것이니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악덕 기업은 존재하고,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대하는 윗분들은 여전히 횡포를 부리고 있으며, 남보다는 자신의 영위와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모두 야유회나 행사를 한다. 직원들은 구경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괴롭고, 귀찮고, 사회생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자아이의 통화는 회사의 행사에 대한 선입견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을 통해 향후, 자녀가 있는 회사원들은 이런 똑똑하고 현명한 나의 딸이나 아들이 상사에게 이렇게 전화로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여보세요, 000 딸(아들)인데요.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아빠가 집에서 휴가를 지낼 수 있도록 원하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 있으면, 좋은 방향으로 아빠에게 휴가를 선물해주고 싶어요. 그것도 몰래요 ㅎㅎㅎㅎ.' 설마, 이런 통화에 단칼로 거절하는 상사가 있을까? 만약, 존재한다면 그 이후의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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