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여행 에세이#5 우리는 왜 스포츠에 빠져들까)
나 자신은 평범할 지언정 내가 속한 인간 자체는 대단한 족속이야 라는 발견이 우리의 다소 평범하고 각박한 삶에 대한 희망이 된다.
"일본은 이 난리에 기어코 올림픽을 한대?"
몇 달전까지만 해도 샐쭉한 목소리를 내던 나였다. 그런데, 올림픽에 빠져 버렸다. 시작은 남자 기계체조 단체 경기였다.
"양학선이 누구야?"
"양학선 몰라? 양학선 기술이 있잖아. 근데 양학선 말고 이 사람들도 잘한대. 메달 가능성 있대.."
문외한인 나에게 언니는 이것저것 다양한 얘기를 해 주었다. 화면에 비친 네 명의 남자 선수가 보였다.
"몇 살이야? 완전 애기다!!"
그랬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 해사했지만 반면 근육질의 단단한 몸이 돋보였다. 압권은 경기를 마치고 나온 후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였다. 어떻게 저렇게 맑게 웃을 수 있을까? 그들의 미소가 궁금했다. 스무살 남짓한 어린 친구들이 어쩜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티비가 켜진 언니의 방을 지나갈 때마다, 어떤 경기를 하는지 물어보았다.
"오늘 축구, 배구 둘 다 하는 날이네."
여자 배구가 한창이었다. 그것도 한일전에 세트 스코어는 1대1. 곧 이어 멕시코대 한국의 축구 8강전 경기가 곧 시작된다고 하였다. 역시 여기에도 스토리가 있었다.
"김연경이 메달 메달 한대."
"김연경? 러시아 가서 뛰지 않았어? 돌아왔네?"
"중국에서 뛰다가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왔는데 다시 중국 갔어."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진지함과 투지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자꾸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아니 김연경의 이름이 연달아 나왔다. 공격수 중 떴다 하면 김연경이었다. 우리는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돌렸다 돌렸다 기술을 활용했지만 축구는 4대1 패색이 역력했다. 배구 역시 고전 중이었다. 축구가 5대 2 스코어로 치닫자 결국 우리는 배구에 정착하기로 했다.
실력은 일본이 한 수 위였다. 그들의 공격은 시원시원했다. 결국 세트 스코어는 2대 2까지 이어졌다. 5세트에서 일본이 8점을 먼저 얻고 코트를 이동했다. 주도 흐름은 일본이 잡는 듯 했고 선수들의 움직임은 기력이 다한 듯 무거웠다. 결국 13대 14 일본에게 매치 포인트를 내 주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그런데, 선수들의 초인의 힘이 발휘했는지, 14대 14 동점을 만들더니 16대 14로 결국 5세트를 이겨낸 것이다. 선수들만큼은 아니지만, 짜릿했다.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쏟아냈다.
최종 하이라이트는 높이뛰기 종목. 우리나라가 높이뛰기 강국이었나? 어렸을 때 88서울 올림픽은 큰 이슈였다. 그땐, 유남규나 현정화같은 간판급 스타나, 여자 양궁이 몇 관왕을 차지했느니 하는 것에 초집중해서 보았었는데, 오죽했으면 지금 그들의 이름을 생생하게 다 기억해내니 말이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은 사이 그들은 열심히 땀을 흘렸고, 세계 무대에 우뚝 섰다. 높이뛰기는 개인 종목이라 선수 얼굴을 자세히 클로즈업 해주었다. 뛰기 직전, 그가 미소를 지으면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거는 모습, 바 넘기에 성공하고 포효하는 장면을 주의깊게 보았다. 더불어, 우리나라 선수 뿐만이 아닌 경쟁의 외국 선수들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탐베리라는 선수는 바를 넘는 도전 직전 관중들에게 박수 갈채를 유도했다. 자신의 얼굴 그림이 그려진 양말도 눈에 띄었다. 단발의 머리를 반으로 묶은 얼굴은 요리봐도 조리봐도 다비드 조각같았다. 그의 얼굴이 조금만 못났다면, 그의 균형잡힌 늘씬한 몸이 조금만 짧았더라면 그렇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그의 첫인상은 못에 걸려 튀어나온 니트옷의 보푸라기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바르심이라는 선수와 함께 공동 금메달이 결정된 순간 그의 이미지는 180도 달라졌다. 그의 몸과 정신은 혼이 나간 양,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오열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바 넘기를 도전할 때 Road to Tokyo 2020X- 2021 이란 글을 적은 발목 부목을 옆에 두고 뛰었다. 알고 보니 그는 완치되지 않은 발목 부상을 안고 경기에 임했던 것이다.
아! 4년도 아니고 5년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왔구나. 자칫하면 올림픽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간 선수들은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그와 동시에 내가 보아왔던 선수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우리는 스포츠에서 영웅 스토리를 발견한다.
사실, 인간의 삶 자체가 스토리이다. 그러나 인간은 평범한 일상에 주목하지 않고 비범한 스토리에 관심을 둔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 우리는 '영웅'을 만난다. 선수들은 이전의 기록들과 인간 한계에 도전하고 상대를 두고 경쟁하기도 한다. 운동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뛰어난 운동 선수들은 게으름과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몸과 정신의 근육을 키워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인간을 신과 같은 존재가 되게 한다.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 그들이 느끼는 짜릿함을 우리는 대리 만족한다. 뛰어난 운동 선수는 몸 뿐 아니라, 얼굴에도 건강한 혼이 느껴진다. 특히 경기에 임할 때의 그들의 결연함은 나에게 넘사벽과도 같다. 나 자신은 평범할 지언정 내가 속한 인간 자체는 대단한 족속이야 라는 발견이 우리 자신에 대한 희망이 된다.
스포츠에 반드시 성공만 있지는 않다. 패자와 실패가 공존하지만 우리는 그들 또한 환영한다. 이렇게 우리가 관대함을 갖는 이유는 뭘까? 사실 우리는 이야기의 결과보다 과정에 관심을 둔다. 모든 삶의 이야기의 끝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내일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마라. 행복은 과정에 있다.' 고 말한 대로 행복은 과정의 추구에 있다. 내 삶이 대단하지는 않더라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나는 성장하는 존재라는 희망. 지금의 내 삶이 초라해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우리는 늘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다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라는 공감과 위안을 받는다.
인간은 이타성을 발견하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우리 나라 마라토너 중 오주한 이라는 선수가 있다. 케냐 태생으로 얼마전 한국으로 특별귀화했다. 오창석 코치는 2007년부터 케냐에서 현지 선수를 발굴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선수들의 영광의 순간, 아니, 성공 여부에는 상관없이 그들을 지지하고 이끌어 주는 지도자가 늘 옆에 있다.
도마 종목 동메달을 딴 여서정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내려와서 코치에게 달려간 순간이 그려졌다. 금테 안경에 나이가 지긋한 코치는 두 손을 들어 여서정 선수의 양볼에 꽃잎 받침을 하며 웃었다. 그녀의 얼굴이 카메라에 비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녀가 아이 같은 얼굴로 코치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려졌다. 우상혁 선수는 바 넘기에 성공할 때마다 관중석에 앉은 코치를 바라보았다. 코치가 주먹을 올리며 뛸듯이 좋아하던 모습도 여러 차례 카메라에 담겼다.
타인을 도와주고 격려하고 환호의 순간을 함께 공감하는 것. 깊은 수준의 교감을 나누는 타인에 대해 흐뭇해 하며 우리는 스스로의 이타성을 발견한다.
오창석 코치는 오주한 선수를 꽤 오랫동안 지도해 온 모양인데, 케냐 현지 풍토병이 걸려 지난 4월 귀국했지만 곧 사망했다. 그 날이 5월 5일인데 올림픽 경기가 채 석달이 남지 않은 날이다. 죽음 9일 전 사직서를 내어 오주한 선수에게 다른 코치를 선임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하여 순직 처리를 포기한 셈이다. 군인 재직중인 장남에게 사직서 대리서명을 하도록 했다는 후일담까지. 몇 일 전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인생사가 못내 내 가슴에 남은 것은 이타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숨은 심리일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한 올림픽 스토리를 즐기고 있다. 8월 8일 폐막을 장식할 마라톤 경기를 나는 큰 관대함으로 지켜볼 것이다. 오주한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지 아닐지는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