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여행에세이#1-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거야. 아빠랑 결혼할거야.’
아빠는 유년 시절, 나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엄마는 늘 바빴고 무뚝뚝했다. 나에게 엄마란 ‘일을 많이 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나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늘 엄마는 이 말을 달고 사셨다.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청소도 안했냐? 설거지도 안했냐? 빗자루로 좀 맞자!” 나와는 아홉 살, 여덟 살로 나이차가 꽤 났던 큰언니와 둘째언니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어려운 존재였다. 두 살 위인 셋째 언니와는 늘 함께였지만 엄마 못지 않은 잔소리쟁이였다. “설거지할 때는 거품이 완전히 없도록 깔끔하게 해라. 친척 집에 가서 주는 음식 다 먹지 마라. 화장지를 아껴 써라.” 엄마와 언니들의 구박을 받는 신데렐라처럼 내 생은 고달팠다.
아빠와의 기억은 즐거운 이야기가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 저녁마다 아빠는 내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다. 입학 등록을 하러 갈 때도 아빠와 함께였고, 내가 아파서 병원을 찾을 때도 아빠 손을 잡고 갔다. 한번은 아빠와 앞뒤로 버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아빠는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창가를 가리키셨다. 대여섯살 밖에는 되지 않을 남자아이가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내가 “왜?”라고 묻자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귀여워서” 나는 아기 대신 한참이나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 귀엽다.’
‘dad’s pet’
나는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딸임이 분명했다. 언니들이나 온 식구들과 있을 땐 엄하고 어려운 존재였지만 나와 단둘이서는 한없이 다정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와 셋째 언니가 다니던 주산학원에 아빠가 찾아오셨다. 그날은 왠지 언니가 학원에 오지 않았는데 아빠는 미리 그것을 아는 눈치였다. 학원 공부가 마치기를 기다리다 아빠는 어느 보신탕집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리고 “여기에 온 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그 고깃국을 두 스푼 정도만 뜨고 말았지만 확실히 느꼈다. 자식들 중,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은 분명 나였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아빠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아빠를 귀찮게 했던 어느 일요일의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뒷마당에서 아빠는 집안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아빠가 좋아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이런저런 사소한 질문들을 해댔다. “아빠, 이건 뭐야?” “아빠, 이건 어떻게 생각해?” 이런 질문들은 내가 똑똑하다는걸 아빠에게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아빠는 몇 번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 주셨지만 아빠의 피곤함을 읽지 못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연이어 질문들을 생각해 냈다.
“아빠, 근데…”
“너, 되게 사람 귀찮게 하는 아이다!”
나의 온몸이, 뇌가 얼어붙어 버렸다.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아빠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큰언니와 작은 언니는 대학 입시를 고민해야 했고, 아버지의 관심은 두 언니들에게 깊어졌다. 아니면,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을 향했다. 아빠는 점점 무서워졌고, 나는 아빠와 대화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빠를 마음에 품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았다. 혼자 사는 동안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과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 늘 섭섭해 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잔소리 대마왕이던 언니는 베스트 프랜드로서 모든 일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빠와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서먹해지는 것이다. 이제 아빠는 내 가족 중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데, 아빠에게는 내가 가장 가까운 거리의 가족인가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방문을 두드리신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사셨기 때문이다. 전화란 받고 거는 용도 이외로는 사용을 안해보셨는데, 요즘은 그렇게 메시지 보내기를 배우고자 혈안이시다. 이미 여러 번 알려드렸는데도 아빠 뇌의 입력장치는 영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어젯밤 내 방문 사이로 아빠의 얼굴이 조심히 등장할 때부터 난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내 목소리는 도마 위 놓인 동태 머리를 내려치는 듯 하다. 말수는 최대한 줄이고 어조는 매우 강력하다.
돌아보면 아빠는 변함이 없었다. 어린시절의 나에게만 특별히 다정했고 커가면서 냉담해지신게 아니었다. 변화는 나에게 있었고, 나에게 찾아온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였고 나는 그것을 극복하며 성장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성차는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후천적으로 사회나 문화속에서 발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은 아이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 신탁 때문에 두려움에 아들을 내다 버렸지만, 오이디푸스는 결국 그 신탁대로 행하게 된다. 아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겪고 극복하면서 남녀로 성장해 간다. 인간은 유아때부터 성충동에 의해 발달하며, 성충동이 남근에 집중되는 3~5세 시기, 남근기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경험하고 극복한다. 이 시기 유아의 성충동은 남근에 집중되는데, 남자 아이는 어머니의 신체에 탐닉하면서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게 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귄위를 따르게 되고 아버지를 이상화하면서 그의 남성성을 따르게 된다. 그에 반면, 여자아이는 남근이 거세된 신체를 가졌기 때문에 아버지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 이를 우회적으로 가지려 하면서 여성성을 갖게 된다.
오랜 시간을 잊고 지냈다. 나는 다시 확인한다. 아니, 확인하고 다짐해야 한다.
‘나는 아빠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