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분명 독일어임에도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만 같은 이름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상당히 도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화면이 나오지 않고 소리만 나오는 건가, 영사 사고인가 의심할 정도의 빈 화면이었다.
그건 검은 화면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이건 연출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 제목은 점점 눈을 감듯 뿌예지며 사라졌다.
정말 인간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야가 흐려지는 것과 같은 섬세함이었다.
그건 내가 눈을 감는 건지조차 모를 정도로 흡착된 경험이었다.
단순한 까만색이 아니라, 투명한 레이어를 띄운 듯한, 아무것도 상영되고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현실에서 소리 하나를 매개로 시작되는 이 감각은, 영화가 아니라 내가 겪는 현실처럼 느껴졌다.
마치 마지막 기억이 흐려지듯이.
학살의 장소가 누군가에겐 천국일 수도 있을까.
내가 공들이고 기여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공간은 가족에게 가장 부유하고 편안하며, 많은 것을 거머쥘 수 있게 하는 장소였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곳이었고, 자다 깨서 학살 작전을 주고받아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인간이 아닌 것만 같다고 느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더 친절할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라는 영화의 카피라이트가 떠올랐다.
누군가는 악마화도 결국 사람을 미화하는 거라고 말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를 좋게 볼 수 없다고 하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고,
결말을 되돌리고 싶고,
견딜 수 없고,
화가 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영원히 나를 괴롭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들에게 허락된 무덤이란 게 옷 무덤밖에 없다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치를 떨게 했고, 수미상관처럼 화면은 다시 암전 되었다.
영화는 끝나지 않은 듯한 배경음악과 함께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배경음만 있는 것 같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뜨고 점점 선명하게 구분되는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 멜로디는 사람의 음성 하나 없이도 아우성처럼 느껴졌고,
그 위로 흘러가는 만든 사람들의 이름은 마치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소리 같았고,
그 하나하나가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