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빛바랜
편지 뭉치와 함께
깊숙이 묻어 뒀던
다신 꺼내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도
차마
버리진 못했던
맨 아래 서랍 구석에 처박아 두곤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던, 아니
잊어야 했던
한여름 낮 모래사장처럼 뜨거웠다가
한겨울 밤 버려진 연탄재처럼 차갑게 식었던
손목시계
그 수많은 기어와 스프링에 묻힌 심장에서
소리가 났다
“째깍!”
너, 아직도
거기 있었구나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저 내가
잊었던 거구나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있는 시곗바늘
용두를 돌려 시간을 맞춰야 할까
태엽을 감아 다시금
천천히 걸어 볼까
한 줄 깊이 팬 시계 유리창 속
초침이 흔들린다
[2015-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