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이지만, 꿈꾸는 한약사입니다.
"에고~ 덥다~"
요즘은 모두 이렇게 인사를 하신다. 날이 너무 더우니 당연하다.
"어제 변비 때문에 혼났잖아~"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자서 그런지 몸살기도 있고~"
-아, 변비는 잘 해결되셨어요? 오늘은 몸살기가 있으신 거고?-
"집에 소화제도 떨어졌더라고~"
-예....... 그럼 어떤 게 필요하세요?-
"우리 아들이 먹을 감기약 좀 줘. 상비약으로 가져간 거 다 먹었다네~"
한약국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 중 중요한 일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거다.
나름 편하다고 생각하셔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실 때 정말 중요한 말(어디 아프신 건지, 지금 불편한 건 뭔지, 언제부터인지~)을 놓치면 안 되니까.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특히 본인이야기 하시다가, 자녀이야기, 친구분 이야기로 넘어가기 쉽다.
처음 방문하신 분들은 내가 어색하실 테니 더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그게 내가 하는 중요한 일중 하나다.
어느 일이든 듣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있으니까.
초보일 때는 말하는 사람의 말 자체에 집중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면에 숨겨진 진짜 말이 있다.
섣불리 꺼내기 어렵거나, 본인도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아서 꺼내지 못하는 진짜 말을 찾아야 한다.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 그게 감기 때문인지, 화가 나서인지, 체기가 있어서인지는 조금 더 들어봐야 한다.
진짜 원인을 알아낼수록 더 잘 맞는 약을 드릴 수 있다.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하시도록 하다 보니 어떨 땐 내가 한약상담 중인지, 인생상담 중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뾰족한 답을 드리는 것도 아닌데, 본인 이야기 실컷 하다 보면 스스로 정리가 되었는지 아픈 게 가라앉는다는 분도 가끔 있다.
유난히 말귀를 잘 알아듣는 날이 있다. 몇 마디 들었을 뿐인데, 작두 타는 사람처럼 족족 알아듣는 날.
이런 날은 환자들도 나도 기분이 좋다.
'오호~ 이제 나도 내공이 좀 생겼나 본데~보기만 해도 뭔지 알지!'
또 어느 날은 유난히 말귀가 안 들리는 날이 있다. "아니, 그게 아니고~"이런 말 몇 번 듣다 보면 위축되기 쉽다. 내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나 고민이 가득하면 다른 사람 말이 잘 안 들리고, 내 마음이 평안하면 말귀가 잘 들리는 나름의 근거 없는 통계가 생긴다. 내 그릇이 넘쳐나지 않게 마음관리를 잘하든지, 내 그릇을 더 키우든지 뭔가를 계속해야 한다.
16년이나 한약사 노릇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마음관리가 들쑥날쑥 거린다. 프로에게서 느껴지는 '흔들리지 않는 내공'은 드라마 주인공들 이야기고, 난 여전히 몹시 흔들린다. 우선 말귀라도 꾸준히 잘 알아듣는 직업인이 되려면? 음.... 아무래도 책을 봐야겠다. 혼자서는 좀 힘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