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헤매는 50이지만...
고등학교 때 저녁시간이 끝나고 자율학습이 시작되면 친구들을 찾으러 다녔다.
학교 근처 만화가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애들이 꼭 있어서였다.
주임선생님이 지키는 날은 누구든 서로서로 반 애들 챙기느라 바빴다.
까딱 잘못하면 반 전체 잡들이 하는 건 비일비재했으니까.
그때마다 순정만화에 빠져 아쉬워하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뭐, 맨날 왕자 나오고 유치하드만~ 뭐가 재밌지?'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50이 다 돼 가는 난 요즘 로맨스 소설에 빠져있다.
저녁 챙기고, 애들 봐주고... 10시가 넘어서야 나에게 주어지는 그 귀한 시간에
웹소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에게 주는 휴식이라며, 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온갖 핑계를 갖다 대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18살에 봐도 유치하던 로맨스소설이 지금은 유치하지 않겠나?
여전히 유치하고 뻔하다. 그런데 그게 나를 편하고 기분 좋게 한다.
안 그래도 복잡다단한 일상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함과 말랑함이 나를 위로해 준다.
언젠가부터는 남편과 다투거나,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웹소설을 보면서 마음을 푼다.
유치한 말랑함으로 긴장을 풀고,
소설 속 까칠하지만 매력 넘치는 남자주인공을 보며 남편의 존재(?)를 잊는다.
좀 무서운 말처럼 들리지만, 그 당시 내 맘은 정말 그렇다.
지지고 볶는 일상을 공유하는 남편을 지우고, 소설 속 멋진 남자 예쁜 여자 매력적인 사람들에게 빠져든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내 맘도 풀리고, 남편을 보는 눈매도 좀 순해진다.
가끔은 소설에 너무 빠져서 내가 화가 났었다는 걸 잊고, 남편을 너무 부드럽게 쳐다볼 때가 있다.
'아차! 너무 빨리 풀리면 안 되는데~'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덜 불편하다.
언젠가 엄마가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어릴 때랑 똑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그 말이 실감 난다.
10대에도, 40대에도, 70대에도 사랑받고 사랑하고 또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맘을 포근하게 한다.
유치하고 뻔한 로맨스 영화, 드라마, 소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도 사람들이 로맨스를 통해 얻는 위로와 공감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웹소설 덕분에 당신이 그나마 평안한 걸 알아야 할 텐데... 고맙게 생각해라...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