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엄마 노후 걱정 고마운데..
방정식 좀 풀어볼까

여전히 헤매는 50이지만,

주말에 마트에 가지 않아서인지, 아침에 챙겨 먹을 과일이 없다.

서둘러 퇴근 후 남편과 마트에 간다.

출발할 때는 늘 필요한 것만 사 오자며 야무지게 메모를 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정리를 해보면 메모를 왜 한 거야 싶게 이것저것 많이 사 온다.

마트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집에 필요한 것들이라서, '이거 사야 되나?' 하면 '있으면 좋지~'이다.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면

일상의 모든 것들이 아이위주로 흘러가고 마트에서 장 보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거 애들이 좋아해~. 이거 애들이 잘 먹더라고. 이거 애들이 먹고 싶댔어~.'

장본 후 물건을 꺼낼 때마다 반가워하는 아이들 리액션에 기분이 좋다.

'와~맛있겠다!''와~이런 것도 있네!'


저녁에 30분 정도 문제풀이를 같이 하는데,

오늘따라 딸들이 부모님 노후 걱정이 많은가 보다. 말이 많아진다.

"엄마~~,엄마 아빠가 결혼이 빠른 건 아니잖아? 그래서 그러는데 노후준비는 잘 되고 있어?

돈은 잘 모으고 있어?"

"아니~잘 안되고 있지~"

"그럼, 우리 이제 고기를 좀 줄일까?"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어떡해?"

듣고 있던 남편이 "니들이 책임져야지~!!"하며 광대를 실룩거린다.

"우리가 어떻게 책임져...??"

실랑이를 듣고 있다가 깨닫는다.

아하~! 딸들이 공부가 하기 싫은 김에 겸사겸사 부모님 노후를 걱정하는구나.

길어지는 실랑이에 내가 나선다.

"딸들, 엄마 아빠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딸내미들은 본인 앞길 준비나 잘하시오~"


눈치 빠른 큰 애가 주제를 얼른 바꾼다.

"엄마, 억대 연봉을 벌려면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해?"

"모르지. 네가 알아봐야지~"

"엄마, 구글에 취직하려면 전공을 뭘 해야 해?"

"모르겠는데, 네가 한 번 알아봐~"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남편과 나는 '니들이 하고 싶은 거 해라~ 하고 싶은 게 뭔지 천천히 생각해 봐라~!' 하는 편이라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말이 길어진다.

AI에 영향받지 않는 직업이 뭘까, 어떤 직업이 흔들리지 않을까, 무척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쌍둥이들의 쿵! 짝! 이 절묘하게 잘 맞는 순간이다.

어떤 말과 주제를 꺼내면 엄마, 아빠의 말이 길어지는지~ 집중력을 확 떨어뜨릴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40분이 흐른다.

방정식을 풀고자 하는 의지가 0.1도 남아있지 않은 딸내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문제집 풀이(?)는 마치는 걸로 한다. 딸들아~엄마가 채점해 보니까 니들 다 틀렸더라. 장난 아니던데...

엄마, 아빠 노후준비 염려는 내려놓고 방정식을 좀 풀어보는 게 어떨까?

방정식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싶다.


딸들이 부모님 노후걱정 안 하도록 엄마도 뭔가를 잘해볼게.

음... 여러 가지로... 말이지...

사실... 엄마도 좀 걱정이 되기는 해....

우리 각자의 삶은 알아서 책임지도록 해보자...

근데...지금은 솔직히 니들 수학이 더 걱정이다.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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