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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당 Oct 05. 2021

한 세상을 구한 사연

2021년, 8월 6일


  계절은 성실하게 온도를 쌓아간다. 봄에는 꽃구경에 취하고 자라나는 잎구경에 헤벌레해지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결에 바람도 나고 새소리에 귀도 뚫렸다. 그런 팔자 좋은 날들은 벌써 옛일이다. 더위에 그 기억은 신기루처럼 흐물흐물 사라져간다. 덥다고 걷기를 멈추면 여러 달 시간을 들여 애써 짓고 있는 몸이 녹슬지도 모른다. 손바닥만한 그늘이라고 비집고 들어가 만보걷기를 이어간다. 복병은 땀이다. 옷에 번지는 땀은, 저 사람은 저 부위에 저런 모양으로 땀이 나는구나 순식간에 들켜버리는 비밀같은 것. 주민번호 유출보다 더 아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길섶에는 접시꽃이 짱짱하게 곧고 높게 피었지만 봄의 명자꽃 대하듯 사랑하지 않고 바삐 지나친다. 매몰찬 변심이다. 세상에 없는 연애지상주의자인 척 하더니, 비정한 독신주의자로 바뀌었다. 꽃을 애지중지하던 마음은 어디 갔나 더위에 녹은 감성은 형체가 잡히지 않는다. 데크길 난간에는 '뱀이 나올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오'라는 안내문구가 걸려있다. 길 가다 뱀을 밟지 않도록 주의도 해야 하는, 낭만 따위 없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 갇혔다. 여름의 창창함과 매미를 좋아하지만 이 온도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      


  그 사이 성가시게 늘어난 건 벌레뿐이다. 어느 날 데크 난간 위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하얀 꽃잎이 차례로 놓여 있는 걸 봤다. 어디서 떨어진 꽃잎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웬 벌레가 꽁무니에 하얀 날개같은 것을 펴고 있는 게 아닌가. 조신하게 기어다니는 모양새가 예뻐 찾아봤더니, 쳇, 갈색날개매미충의 약충(번데기과정이 없는 불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의 유충)인데 해충이라나 뭐라나. 가지에 산란해 나무를 말라죽게 만드니 인간과 나무에게 유해한 벌레였다. 데크 바닥에는 개미들이 무시로 드나들고 날벌레들은 자꾸 내 얼굴에 들러붙는다. 여름의 산책은 분투와 오기의 훈련장이다. 꾸역꾸역 집을 나서서 햇빛과 벌레와 타인의 체취를 피해다니기로 작정한 내 자신아, 불평은 거두라.      

  

  그 날도 만보걷기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걸음은 빨라지고 내 숨소리만 거칠게 들리는 일종의 워킹하이 상태였다. 데크 난간을 낮게 만든 간이벤치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계셨다. 할머니들 앞을 막 지나려던 찰나 한 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 왔다.


  “얘가 저 끝에까지 갈 수 있겠나?”

  

  그 의미를 헤아려보기도 전에 내 걸음은 할머니들을 지나쳤다. 다시 또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이고, 안 밟고 지나갔네.”


  분명 무척 빠르게 걸었는데 1, 2초 남짓한 그 시간이 그려낸 장면은 느릿느릿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스쳐 지나온 순간 이 상황을 모조리 이해했고 이해와 동시에 폭소가 터져버렸다.      

  

  함께 걷다가 잠시 쉬어가자 두 분은 앉으셨겠지. 항아리 몸매의 똑닮은 두 할머니는 앉아서 바닥을 보고 계셨겠지. 바닥에는 이런저런 벌레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유달리 눈에 잡힌 한 마리가 있었겠지. 큰 먹이를 물고 촐랑대며 기어가는 개미였을까, 한 방향으로 진득하게 나아가지 않는 녀석이라 과연 데크의 반대쪽 끝까지 갈 수야 있겠나 하는 마음이었을까.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하게 쉬지 않고 나아가는 어떤 애벌레였을까. 아니면 며칠 전 이름을 알게 된 알통다리꽃하늘소였을까. 뒷다리가 알통이 생긴 것 마냥 통통하고 붉은 날개 등 쪽에 검은 점이 또렷하게 박힌 녀석이 할머니들 눈에 잘 띄었던 것일까.

  

  할머니들은 그 꼬물거리는 것이  제 할 일을 하며 바지런히 가는 것이 기특해서 보고 계셨을 거다. 다섯 살 꼬맹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신기한 세상을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 80이 넘어서도 세상을 관찰하는 그 밝은 눈과 호기심이 아름다웠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지 않고 그것이 무사히 저 반대편까지 건너가기를 바래보는 작은 소망. 그것을 밟지 않고 지나온 나의 행운에 감사했다. 내 무지하고 무자비한 발이 한순간에 그것을 끝장내버렸다면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었을 거고 아이들이라면 울었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생사를 가르는 그 길을 잘 비껴 와서 다행이었다. 할머니들이 주연인 영화에 아슬아슬한 연기력의 엑스트라가 그 장면을 망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어떤 이야기 속의 나는 그 길을 되돌아간다.

  촘촘하게 바닥을 살피고 사뿐사뿐 발을 디뎌 할머니들 옆으로 가서 한 자리 비집고 앉는다.

  “저도 함께 봐도 되지요?”

  한껏 눈의 불을 밟히고 그 지나가는 생명체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볼 테지. 우리 셋은 오늘의 염원을 다 담아 그것이 제 세상을 머리 위에 이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무사히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겠지. 데크의 반대쪽으로 사라질 때 성공을 축하하며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완성된다.      


  그나저나 나는 그 작고 꼬물거리던 것이 무엇인지 참말로 궁금하다. 그 날 이후로 더 유심히 땅을 보고 지나다닌다. 한 세상을 한 순간에 끝내지 않도록 조금 더 조심해서 걸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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