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4)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냉장고를 찾았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그는 잠시 비틀거리더니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더니 속에 있던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변기의 물을 내리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변기에 얼굴을 박고, 토악질을 하더니, 거친 숨을 뱉어내길 잠시.
그는 어렵사리 몸을 일으켜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머리를 담갔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조금씩 안정되어 갈수록 그의 숨은 거칠어졌지만, 그는 물속에 담긴 머리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그가 코와 입으로 물을 뱉어내며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화장실 앞에 배치되어 있는 수건 하나를 꺼내 머리에 둘렀다.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자신의 바지를 들어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나온 것은 라이터뿐, 그는 다시 화장실로 가서 치약을 입에 짜 넣어 씹은 후 뱉었다.
그가 모텔에서 나온 시간은 오전 7시 40분.
그는 터덜거리며 걸음을 옮겼고, 그가 도착한 곳은 콩나물 해장국 집 앞이었다.
하지만,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고, 그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컵라면과 일반담배 한 갑, 멘솔 한 갑을 산 그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은 후 담배를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지나가던 행인에게 붙들려 한 소리를 듣고 담배의 불을 꺼야 했지만.
그는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본 후 잠깐 망설이더니 폰을 켜서 전화를 걸었다.
“네. 교수님. 몸살이 심하게 들어서 하루만 쉬겠습니다. 지금 병원 가는 길입니다.”
그는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말을 했고, 교수는 그에게 답을 했다.
[어제 술 마셨지?]
“네?”
[석준이도 오늘 결석한단다. 술 병 나서. 누구하고 마셨냐니까 너하고 마셨다던데?]
그는 폰을 들고 있지 않은 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쥐었다.
[푹 쉬고 내일 보자. 대신, 넌 내일 창고 청소다. 석준이도 같이.]
그는 죄송하다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배를 문지르던 그는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약사에게 말했다.
술 깨는 약 좀 달라고.
학과장 개인 교수실에서 4명의 교수 앞에 앉아 있던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부들 거리는 그를 보고 있던 학과장이 그에게 물었다.
“병이 있었다고 했나?”
-한 시간 전, 그는 창고를 청소하고 있었다.
숙취가 남아 식사를 거른 그는 약을 먹는 것 마저 잊고, 힘 없이 팔을 휘적였다.-
“네...”
“병명이 뭔가?”
-자신의 몸에서 힘이 빠지고, 혀가 굳으며 말려드는 것을 느끼며, 세차게 머리를 흔든 그는,-
“대답해라.”
학과장이 거친 목소리로 그를 다그쳤다.
-끝내 교수들이 보는 앞에서 전신을 부들거리며 의식의 끈을 놓쳐버렸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간질이라고 합니다.”
학과장이 그에게 물었다.
“간질?”
“정신적... 뇌에 문제가 있어서... 자신의 의도가 없어도 쓰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랄.. 병이라고 불렀던...”
“......”
“하...”
학과장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1반의 담당 교사였던 교수가 뭔가를 아는듯한 말투로 말을 시작했다.
“기절만 하지 않으면, 그 사이에 진정하면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던데, 학생은 어때요?”
“저는... 기절이... 제 간질의, 증상입니다.”
1반의 담당 교수는 입을 다물었다.
2반의 담당 교수가 입을 열었다.
“잘 못 뽑았군. 자퇴하세요.”
남은 교수가 담당 교수의 말을 받아 이었다.
“2학기부터는 제가 담당 교수로 바뀌지 않습니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묵직해진 몸으로 아등바등 버티며 하루를 보냈다.
그놈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술을 마시면 기본 3일은 앓는 놈이.
숙취만 아니라면.
작업반장이라는 명찰만 아니라면.
기숙사 반장이라는 명찰만 아니라면.
그는, 결코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오만한 생각임을.
난 그를 비웃으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기숙사 침대 위에 누운 그는 몸을 웅크렸다.
푹신한 겨울 솜이불 위에서, 그는 더욱 이불 안으로 몸을 가라앉혔다.
들어 올리지 못한 눈꺼풀이 내려앉고 이내 고른 숨소리가 그에게서 들려왔다.
새벽 3시 20분.
흠칫하고 어깨를 떤 그는 슬며시 손을 뻗어 자신의 엉덩이 아래를 꾸욱하고 눌렀다.
그리고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피딱지가 묻어 있는 속옷과 비릿한 냄새가 배어있는 바지를 벗어 손빨래를 한 후, 샤워기를 틀어 자신의 몸을 씻었다.
엉덩이에서 흘러나오는 선홍색의 핏줄기가 물줄기에 섞여 붉은색이 연해졌다.
자신의 몸을 씻는 그의 어깨가 슬며시 들썩였다.
그는,
새벽 이른 시간 일어났다.
몇 숟갈 뜨지도 못한 식판을 반납대에 끼우고,
흡연장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자판기를 찾아.
율무를 한 잔 뽑아,
한 모금을 마셨다.
그제야 흐릿했던 그의 시선이 조금씩 맑아졌다.
“야, 또라이! 괜찮나~?”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석준을 향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던졌다.
그리고 그는 부들거리는 자신의 팔을 보며,
의식의 끈을 놓쳐 버렸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그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목이 너무도 말라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힘겹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선생님께 환자분 의식 돌아왔다가 말씀드리고 올게요. 보호자님 환자분 옆에 계세요.
그는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나른함을 느끼며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갔다.
.
“뭐고, 이건.”
눈을 뜬 그는 자신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석준을 보며 물었다.
“정신 챙깄나. 한 대 필래?”
본능적으로 끄덕거리는 그의 목을 보며 석준은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의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려주고 라이터까지 켜준 석준이 말했다.
“빨아라. 불 안 붙는다.”
짙은 멘솔향에 가래 기침을 두어 번 삼킨 그는 준석에게 말했다.
“니가 와 여기있노.”
담배 맛을 음미하며 필터끌까지 핀 담배꽁초를 버리고 한 개비를 더 입에 물던 석준이 잠시 멀끔 거리 더니 말했다.
“있어줘도 지랄이 가.”
“아니, 하... 짜증 내는 거 아니고. 솔직히, 그냥 궁금해서, 됐나.”
“아... 지랄. 아가 뻗었는데 옆은 지켜야지.”
“119 부르면 되잖아?”
“그건 니가 싫어하잖아.”
그는 석준의 말에 멀끔한 눈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글고, 간질병에 대한 지식도 있어서, 알아서 깨어날 거다 싶었지. 글고 지금 깨어났네?”
석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로 담배연기를 뿜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똘아이 갱생이(고집이나 나쁜 행동) 작작 부리라. 처 맞기 싫으면.”
그는 석준을 올려보며 말했다.
“무슨...”
“니도 공부하러 왔을 거 아니가? 아님, 시다바리 하러 온 거였나?”
그는 석준을 올려보며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적이 잠시 이어지고, 그는 석준에게 말했다.
그의 귀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 예. 상전 모실께요.”
석준의 말이 그의 귀에 박혔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
“고마 니 할거 해라. 그라고 때리 치면 될 거 아이가?”
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꼭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석준은 키득거리며 웃더니 그의 입에서 필터까지 다 타버린 담배를 빼내고는 새 담배를 물려주었다.
“재 안 떨구고 피는 것도 기술이네. 마. 기네스 나가바라.”
그는 입에 물린 담배에서 스며 나오는 멘솔연기를 목구멍으로 삼키며 눈을 감았다.
.
환자분 눈 뜨세요.
김 간호사, 환자 의식 차렸다고 했잖아? 혈압계 가져와봐.
선생님! 환자 혈압 60에 20이요!
환자복 왜 이래! 이거 안 보고 뭐 했어! 하혈하잖아!
그는, 천천히 멀어지는 소리에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게 뭐라고.’
그는 다시 잠이 들면 담배를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천천히, 의식을 잡고 있던 손가락에서 하나씩 힘을 뺐다.
환자 잡아! 바늘 빠지잖아!
그가 눈을 뜬 것은 다음날 오전 9시 37분이었다.
그리고 6일 후, 그는 그가 다니고 있던 직업 전문대학이 한 달간의 방학에 들어갔음을 병문안 온 석준으로부터 들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 옆에 계셨던 어머니는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병원 온 김에 푹 쉬고 가자고만 하셨다.
그의 어머니의 눈은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그의 누나가 간호사에게 물어보자, 간호사는 허리도 못 폈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을 텐데 대단하시다고 칭찬을 했고, 그의 누나는 무식한 놈이라면서 그를 욕했다.
-보태는 말
현재는 간질이라는 말 보다는 뇌전증이라는 말을 쓰도록 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서는 뇌전증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으며, 간질이라고 고쳐 말해야만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간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글을 쓰는 중간에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