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3)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는 부산의 한 직업 전문대학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간질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말한 그는 교수들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교수들은 그의 눈앞에서 그에게 다른 대학을 알아보라고 말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1년의 시간이 더 지나 그는 다른 지역의 직업 전문대학에 원서를 냈다.
그는 원서가 접수되고 이튿날 박x스 두 상자를 사서 자신이 신청한 과를 찾아갔다.
4명의 교수 중, 학교에 남아있던 3명의 교수에게 인사를 한 그는 경쟁자 없이 면접 아닌 면접을 보았다.
그는, 미리 학교를 보고 교수님들께 인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학교를 나왔다.
일주일이 지나고 면접날이 되어서 학교를 찾은 그는, 일주일 전에 만났던 교수 중 한 명의 교수가 자신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그 교수는 밝은 미소로 그를 맞아 주었다.
그는 면접을 보는 와중에 단 한 번도 자신의 건강이나 병원 진료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학교를 지원한 동기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2주 후, 그는 직업 전문대학 합격 통지 문자를 받았고, 한 달의 시간이 더 지나, 마땅찮아하시는 그의 아버지와 조심히 다녀오라는 그의 어머니에게 인사한 후, 짐을 챙겨 직업 전문대학으로 향했다.
그는 기숙사로 들어가 짐을 풀고 기숙사 내부를 확인한 후, 겉 옷조차 벗지 않고 침대에서 하룻밤을 뜬 눈으로 보내고 다음날로부터 이틀을 모텔에서 숙박했다.
이틀 후, 다시 그가 기숙사를 찾았을 때, 같은 방을 쓰기로 한 일행이 그의 눈앞에 보였다.
그들은 창틀과 에어컨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인사한 후, 급한 일이 있어 짐만 두고 갔었다고 말하고는 청소에 합류했다.
청소를 마친 그들은 각자가 누울 침대를 골랐고, 방 안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던 그는 2층 침대에서 1층에 자리를 맡았다.
그는 기존에 있던 이불 위에 자신의 짐에서 꺼낸 이불을 덮어 깔았다.
그는 백 팩에서 옷가지를 꺼내는 척 약주머니를 벌려 간질약봉지를 찾아 한 봉지를 찢었고 그것을 호주머니 안에 쏟아 넣었다.
한 방을 같이 쓰기로 한 두 명의 이들에게 인사를 한 그는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외투를 걸치고 책을 펼쳤다.
눈동자를 떨며, 샤프펜슬로 단어 하나하나를 검게 칠해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글을 읽던 그는 힘겹게 한 페이지를 넘기고 책갈피를 끼운 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담배 피는 사람?”
그의 질문에 한 명의 남자가 답했다.
“나요. 앞에 흡연장 있던데 지금 갈 거예요?”
“어. 한 대 꿉고 오자.”
그는 기숙사를 나와 흡연장으로 향했고, 서로의 담배에 불은 붙여준 둘은 깊게 연기를 삼켰다.
“형은 왜 여기 왔어요?”
“나? 당연히 자격증 따러 왔지.”
그의 대답에 남자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흐음... 그래도 형은 여자 만나러 온건 아닌가 보네요.”
“어?.”
“제가 들은 말인데요.”
“어.”
“작년에 우리 과 애가 산디과 애 임신시켜서 둘이 자퇴했다고 하더라고요.”
남자의 말에 그가 왼손의 검지손가락으로 왼쪽 골반을 톡톡 두드렸다.
“... 고작 1년짜리 대학인데?”
“네. 여기 여자 꼬시러 오는 애들 많아요.”
“구라(거짓말) 아니고?”
“구라? 그게 무슨 말인데요?”
“거짓말 아니고?”
“아~. 진짜예요. 남자애가 내 친구였으니까.”
“... 너도 꼬시러 온 거냐?”
“아니요. 전 취업하러.”
“취업?”
“네. 여기 졸업하면 무조건 취직시켜 줘요. 뭐,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면 그만이고요.”
“취직이라...”
“형은 자격증만?”
“어. 난 취업은 필요 없어.”
“진짜로 자격증만 보고 오는 사람도 있네...”
“왜? 다른 소문이라도 들었어?”
“이건 다른 친구 얘기인데, 그 친구는 산업기사까지 따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마음에 드네.”
“그렇죠?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
“근데, 형.”
“왜?”
“형 거 처음 보는 건데 나 한 까치 줘봐요, 나도 펴보게.”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연기를 빨아들인 남자는 초롱거리는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우와, 이거 독한데. 두 번은 못 빨겠네.”
남자가 먼저 들어가고 그는 한 개비의 담배를 더 피운 후 흡연장에서 나갔다.
골반을 톡톡 두드리는 그의 검지 손가락은 여전히 멈추질 않았다.
“냄새 나.”
기숙사에 남아있던 남자는 둘을 보지도 않고 중얼거렸고, 그와 같이 담배를 폈던 남자가 말했다.
“너도 담배 펴. 내가 가르쳐 줄게.”
남아있던 남자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담배를 폈던 남자는 남아있던 남자의 얼굴에 입김을 훅 불은 후, 자신의 침대 자리로 가서 눕더니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는 흘깃 그들을 훔쳐보다 자신의 침대 자리로 가서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키웠다.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 이 그의 귀를 찢으려 할 때,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시끄러워요, 형.”
“어. 낮출게.”
그는 볼륨을 4로 줄이고 그에게 말했다.
“됐지?”
“고마워요.”
남자는 자신의 노트북 앞에 다시 앉아 화면에 열중했다.
남자가 보고 있는 것은 한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는 책을 덮고 이어폰을 귀에서 뺀 후,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한 남자의 뒷머리를 가라앉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슬며시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남자의 뒤로 다가가 남자의 뒤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하늘섬 가기 전이네? 요즘은 어인섬 이야기 시작되지 않았어?”
남자는 시선만 움직여 그를 본 후 답했다.
“다운 받아놓고 안 본 거라, 만화책은 다 봤어요.”
“원나블?”
“블x치까지는 보겠던데 나 x토는 취향이 아니라 안 봐요.”
“흐음... 그럼 공각은?”
“극장판은 봤어요. 아 x라가 더 좋았네요.”
“TV 판도 괜찮아. 한 번 봐.”
“형도 만화 좋아해요?”
“만화와 애니는 다르지.”
“... 형도 오타쿠네요.”
“아직 멀었어. 한 대 더 펴야겠다. 재미있게 봐.”
“담배 핀지 얼마 됐다고, 또 가요?”
“나 골초야.”
“하루에 몇 갑 피는데요?”
“멘솔과 걍 담배 섞어 펴서... 합치면 세 갑에서 네 갑?”
“형... 그러다 죽어요.”
“안 죽더라.”
그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고 기숙사 방에서 나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의 왼손 검지 손가락이 그 자신의 골반을 계속해서 톡톡 두드렸다.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기숙사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형~. 밥 먹으러 가요. 여기 식당 오늘부터 한데요.”
“어, 가자.”
그는 남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몸을 돌렸다.
“형. 근데 하 x바 x 연맹? 그거 없던데요. 어디서 받았어요?”
“나도 친구가 구해준 거야. 다음 주에 집에 갔다 오면 CD 있으니 빌려줄게.”
그에게 그 애니메이션의 CD를 준 사람은 없었다. 물론 CD도 없었다. 집에 있는 컴퓨터에 사이트에서 결제해서 다운로드하여 놓은 애니메이션이 있긴 했지만.
그는, 남자들과 같이 식당으로 향하며 왼손의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쪽 골반을 톡. 톡. 톡. 세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골반을 손바닥으로 스윽 문질러 닦아내며, 자신의 골반을 두드리는 것을 멈췄다.
이틀이 지나고 학교의 강의실에는 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입학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담당교수의 인사말과 소개말이 있은 후, 학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전했다.
“열심히 배워라.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결과는 따라온다.”
그는 학과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박카스를 들고 처음 학교를 찾았을 때, 그를 반기며 숨김없는 미소로 답 해준이가 그였기에, 그는 학과장을 보고 머리를 숙였다.
그는,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었다. 다른 것은 일 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곳은 모두가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오는 곳은 아니었다.
나이는 있는데 할 것은 없어서, 취업 자리를 찾기 위해, 기술이라도 배워 보려고, 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등.
3개월이 지나고 학교의 교실에는 많은 빈자리가 생겨났다.
그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했던 남자는 학교를 자퇴하고 밖으로 나갔다.
학교에서는 기숙사의 방 정리가 먼저 이루어졌다.
그가 있던 방에는 그 혼자 남았었기에 그는 사감의 말에 따라 다른 방으로 이동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에 체격이 좋은 남자가 답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부터였나 보네요. 방 배치 바꾸는 게.”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데요?”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다부진 체격의 남자와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리는 남자.
“네. 저는 2반이었네요. 1반 이세요?”
그가 자신에 대해 먼저 말하자,
“아, 이번에 반 조정되면서 2반으로 옮겼어요. 자퇴 한 사람이 조금 많았나 봐요.”
“저도... 2반으로 옮겼어요.”
그는 새로운 기숙사 방의 일행들과 인사하고 빈 침대에 자신의 이불을 깔았다.
이전의 방에 있던 일행이 묻지 않았던 질문을 체격이 좋은 남자가 물었다.
“이불 안 더워요?”
“푹신해서 덜 배기고 오히려 좋아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한대 구우러 갈 건데, 담배 피세요?”
“아니요. 전 애초에 담배 안 배웠어요.”
그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남자에게도 물었다.
“담배 피러 갈래요?”
“저도... 안 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방문으로 향했다.
그가 방문을 나가자, 그의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육이 좀 많이 갔다 둬야겠네. 보형이라고 했나? 같이 사러 갈래?”
그는 폰을 켜고 메모장에 ‘다육이’를 입력한 후 저장했다.
그는 자신의 왼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강단으로 가는 것을 보며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반 배정이 새로 이뤄지면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의 표정은 무덤덤하였으나 얼굴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그에게 인사했다.
“또라이, 하이.”
전날 흡연장에서 자신의 담배를 훔쳐갔던 도둑놈.
“석쭌이.”
남자가 발끈하며 그의 말에 답했다.
“석쭌이 아니고 석쭌이.”
“그래. 석쭌이 아니고 석쭌이.”
“이게 도랐나. 뒤질래?”
“수업 중이다. 아가리 다물어라.”
거칠게 뿌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던 석준이 아리송한 표정이 되어 그를 잡았다.
“어라. 마, 니 누고. 내 아나?”
“어제 봤잖아.”
“어? 아닌데? 잠만. 니 눈깔 좀 보자.”
남자는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는 거칠게 당겼다.
강제로 몸이 돌려진 그의 눈을 본 남자가 말했다.
“하. 반만 돌았네. 니 지금 정신 오락가락 하제?”
그는 남자에게 말했다.
“씹어먹기 전에 다물어.”
“조절 못 하는 짝빼이 맞네. 나중에 한 대 꿉자.”
그와 남자를 주시하던 교사가 그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전에 남자는 그를 놓아주었고, 때마침 강단에서 내려온 남자 다음으로 그가 강단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두 마디의 인사 후 그는 강단에서 내려갔다.
“작반(작업반장)아. 수업하기 전에 공구하고 자재 좀 챙겨놔라. 바로 수업 시작 할 수 있도록.”
“네, 교수님.”
“아니. 난 그냥 선생이라니까. 이선봉 교수님이나 강장석 교수님, 권태현 학과장 교수님. 그리고 난 장은혁 선생님. 오케이?”
“네, 교수님.”
“하.. 정말... 드라이버나 뺀치, 롱로우즈, 니퍼, 와이어 스트리터, 절연테이프나 흠... 작반아.”
“네, 교수님.”
교사는 지그시를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이거 들고 가서 필요한 거 챙겨 와. 너 기숙사 생활 하냐?”
“네. 두 명 더 있습니다.”
“그래. 야. 여기 작반이랑 기숙사 같은 방 쓰는 애 앞으로.”
2명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들은 그를 따라갔다.
공구와 도구들을 바구니에 담아 챙긴 그들은 교실로 돌아가 바구니를 교탁 옆에 놓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교사가 말했다.
“오늘은 쉬엄쉬엄 진도 나갈게요. 20분 휴식하고 다음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흡연장으로 향했다.
“같이 가자, 또라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한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앞에 보이는 흡연장 만을 주시했다.
흡연장에 도착한 그는 담배 두 개비를 꺼내 한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담배에서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고, 꿀꺽하고 삼켰다.
“또라이, 희한한 걸로 정신 차리네. 나도 한 대만.”
그는 고개를 돌려 석준을 스윽 보고는 자신의 담배 갑을 넘겼다.
“올, 다 주게? 통 크네.”
석준은 담배 갑을 열었고, 이내 툴툴거리더니 담배 갑을 털어 입에 담배를 물고는 그대로 담배 갑을 구겼다.
“여기 자판기 맛있던데? 한 잔?”
석준이 손으로 음료를 마시는 흉내를 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잔 돈 없어.”
“담배 값 대신 쏜다.”
“율무로.”
“아새끼, 냉정하네. 커피가 맛있다니깐.”
그가 석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율무로 할게요.”
석준의 눈꼬리가 찌그러졌다.
“우아... 니 진짜 짜증 난다.”
그의 얼굴 표정에 다정한 미소가 녹아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몸서리를 친 석준이 뒷걸음을 치려고 하자 그가 말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석준은 몸을 돌려 자판기를 향해 달렸고 그는 석준을 따라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