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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이었다.

회색(2)

by 김은석

그는 일어나라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다리를 움직이려던 그는 이내 끙 소리를 내며 몸에서 힘을 풀었고, 소리를 내어 어머니를 불렀다.

그는 어제 있었던 자신의 발작을 어머니에게 설명했고, 그의 어머니는 방에서 나가셨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짧았다.

다시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앞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져 있었고 그는 그것을 보며 헤픈 미소를 지었다.

다시 잠이 들은 그가 깨어난 시간은 11시 40분,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뒤져 라면 봉지를 꺼냈다.

그의 움직임은, 아침보다는 가벼워 보였다.

그가 라면을 다 끓여 갈 때쯤 대문이 열렸고 잠시 후 그의 시선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제 밥 먹니.’라고 그에게 물으며 가스레인지에 올려진 냄비를 보았고, 냉장고를 뒤져 계란을 꺼내 주셨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런 말없이 옷을 챙겨 화장실로 가셨다.

“오늘 일이 좀 많았다. 배선 일이었는데 선 당기는 길이가 멀더구나.”

“오후에는요? 오후에도 일 있어요?”

“오후에는 밭에 갈 거야. 넌 집에서 쉬어.”

그는 다시 한번 헤픈 미소를 어머니께 보여 주고는 식탁 위에 내려놓았던 냄비 깔판과 라면을 끓여 놓은 냄비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책상 위에 냄비를 놓고 의자에 앉아 젓가락으로 라면을 건져 입김을 ‘후~’하고 불었다.

닫혀 있는 방 문 밖으로 그를 찾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이어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를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라면을 입으로 식히며, 다시 입김을 ‘후~’하고 불었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그의 눈에서 그렁해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턱을 따라 흐르다 라면 안으로 ‘똑.’ 하고 떨어졌다.

숨을 삼키며, 다시 한번 입김을 불어낸 그는 이내 ‘끄윽.’ 하고 숨을 삼키더니 소리마저 삼키며 고개를 떨구고 들썩이는 등만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방 문을 열고 나온 그는 아무도 없는 집 안을 서성였다.

고개를 들어 숨을 뱉어낸 그는 이내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그는 폰을 귀에 대고 걸음을 옮겼다.

수신음이 들리고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말했다.

“엄마, 나갔다 올게요. 조금 답답해서.”

[어디 갈 건데?]

“오늘은 다리가 아파서 걷는 건 힘들고, 게임방이나 갔다 올게. 담배 좀 피고.”

[끊어라.]

“헤헤. 술은 끊었잖아.”

[일찍 들어와. 아빠가 저녁에 고기 먹으러 가자더라.]

“고마워요, 엄마.”

[알았으면 일찍 들어와.]

그는 전화를 끊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다시 하루를 죽였다.


그는 짜증 나는 소음에 눈을 뜨고 머리맡을 휘적였다.

손에 잡히는 것을 눈 가까이에 붙여 형태를 확인하고 슬라이드를 밀어 올렸다.

4시 32분.

화면에 떠 오른 시간을 확인 한 그는 소음이 어디에서 들려온 건지 주변을 살폈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은 어두웠지만, 폰 화면의 불빛은 소리의 원인을 찾는데 충분했다.

그가 시선을 향한 곳에는 수십 마리의 작은 개미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개미의 중심에는 거미 한 마리의 사체가 있었다.

시선이 향하자 더욱 소음이 심해졌다.

까득거리는 소리와 퍼걱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울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화장지를 뜯어 개미와 거미 사체를 꽉꽉 짓이겼다.

그것을 말아 쥐고 화장실로 가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귀를 두드렸다.

줄어들지 않는 소음에 끅끅 거리며 입에 거품을 물던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화장실 바닥을 굴렀다.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병원의 응급실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려고 했지만 이내 다시 손을 내려야만 했다.

시선을 옮기며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액 거치대에 걸린 커다란 수액과 카테터로 연결된 자신의 오른팔 손등이었다.

“일어났니?”

그는 자신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는 안 아프고? 넘어질 때 찧인 것 같던데. 혹 났다.”

그는 눈앞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다 입을 벌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입을 벌렸을 때, 그제야 그는 어머니를 불렀다.

“안경이 없으니 잠깐 알아보지 못했네요. 어머니, 아버지는요.”

“밖에서 바람 쐬고 있어. 수액 다 맞으면 가자.”

“이거 다 맞으면 날 밝겠는데요.”

“2시간만 더 맞으면 돼. 이미 한 시간 맞았어.”

그는 어머니의 말에 헤픈 웃음으로 답 해준 후 눈을 감고 말했다.

“그럼 조금만 더 눈 좀 감고 있을게요. 눈이 너무 부셔요.”

그가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한 후,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그의 방으로 향해 이불을 정돈 후 그를 침대에 눕혔다.

차 안에서도 그를 보지 않던 아버지는 큰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미안해서 저러는 거 알지?”

“네, 그럼요. 어머니도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식아.”

그는 어머니의 인사를 듣고는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몇 시간이나 잔 건지 알 수 없었다.

달력을 보고, 폰을 보고, 시간을 확인해 보자, 병원에서 돌아온 날로부터 이틀째의 정오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전기기능사 필기시험 문제집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고, 식사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12시가 되었지만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는 오늘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밥솥에서 밥을 조금 퍼 냄비 한쪽에 조심히 담은 그는 냄비를 들고 식탁으로 향했고, 아침 겸 점심의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그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서 담배 한 개비를 깊게 음미하여 핀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전기기능사 필기시험 책을 펼쳤다.

그는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그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글이었다.

그는 한쪽에 가득 쌓여 있던 노트 중 한 권을 꺼내 책에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노트에 적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발음이 꼬이고 손발이 우그러지려고 하자, 그는 손을 멈추고 몸을 벌떡 하고 일으켰다.

호흡을 고른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소리 없이 필사만을 하기 시작했다.

계산 문제가 나오면 한 권의 노트를 더 꺼내, 그곳에 계산 문제를 적고 문제를 풀어 본 후, 그 아래에 답장을 보고 풀이를 적었다.

겨우 한 페이지의 문제를 푼 그는 자신이 문제를 옮겨 적은 노트를 몇 번이고 읽었다.


(나는 그것을 그가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를 풀던 그가 문제집을 덮고 한숨을 쉬더니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그가 병원을 갈 때도 그의 가방에 있었고, 그가 최소 열 번의 반복된 손동작을 해야 만이 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이었다.

책장에는 만화책도 다수 꽂혀 있었지만, 그 책들의 각 페이지 모서리는 한 결 같이 달아 있었다.

하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만은 표지도 페이지도 모두 깨끗했다.

원태연, 류시화, 신경림, 기형도, 그리고 이상.

그가 보고 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펼친 채 그대로 손으로 누르고 이상 선집 1을 꺼냈다.

책갈피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페이지에 꽂히고 덮였을 때, 그는 이상 선집 1의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표지의 글을 읽고, 25페이지에 있는 시를 읽었다.

이상 선집을 덮은 그는 노트와 샤프펜슬을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장황한 하소연 뒤, 노트에 반복되어 적혀 있는 글귀는 한 단어였다.

-죽고 싶다.

그리고 그는 지우개로 자신이 쓴 글을 지웠다.


이른 아침.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잡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나무라는 어머니 앞에서 짜증을 내긴 했지만 소리치진 않았다.

욱신거리는 왼손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그것을 본 후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그는 넘어진 적도 없었고, 벽돌에 손을 깔린 적도 없었다.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와 배회를 한 적도 없었고, 달리는 운동을 한 적도 없었다.


(나는... 조금은, 자중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2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은 그는 신경과 교수 앞에서 인사를 하며, 교수의 표정을 살폈다.

교수의 눈빛을 본 그는 살며시 미소 지었고, 눈가가 휘어진 그의 표정을 본 교수는 말했다.

“이번에는 잘 지내고 왔나 보네요. 혈색이 좋아 보여요.”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2개월간 전조 증상 한번 없이 잘 지냈어요.”

“그럼 약은 이대로 유지할게요. 다음은... 차트에 적혀 있는 집 주소가 제법 멀던데, 자가용을 이용하나요?”

그는 교수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전 운전 안 해요, 교수님.”

“그래요. 잘했어요. 그럼 버스?”

“네.”

“그럼... 3개월 후에 볼까요? 다시 전조증상이나 다른 증상이 있다면 2개월로 줄이고요.”

“네, 좋아요.”

“그래요. 그럼 3개월 후에 봅시다. 잘 지내요.”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잘 가세요.”

그는 교수에게 빙긋 웃어 보인 후 상담실을 나섰다.

병원에서 나온 그는 택시 승강장을 지나치며 택시 한 대 한 대 의 번호 판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제일 앞에 있는 택시의 번호판을 확인 한 그는 택시 승강장에서 발걸음을 돌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고, 그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에서는 노바소닉의 ‘태양의 나라’라는 노래가 고막을 울렸다.

흥얼거리는 그의 뒤에서 한 사람이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그의 등 뒤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는 입을 다물었고, 시내버스의 엔진소음과 흔들거림이 멎은 순간 그는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내려야 할 정류장은 아직 두 곳이 남은 상태였다.

그는 서늘한 바람에 마스크를 내려 공기를 마셨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린 그는 다시 마스크를 올렸고, 대신 모자를 올려 햇빛을 눈으로 받았다.

그가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였고, 흥얼거리듯 노래를 부르는 그의 주변으로 표정을 구긴 사람들이 지나갔다.

47분 동안 걸은 그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보이자 자신의 손목에 걸려있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버스가...”

그는 중얼거리며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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