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인생

by Jaepil

ㅇ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인생

시인 윤동주라면 누구나 들어 보았을 것이고 '서시'는 국어시간에 자주 나온 시 라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글로 쓰인 시이고 자아성찰 및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을 한 내용으로 지식인으로서 고뇌가 느껴지는 시 이기도 하다. '서시'를 잠잠히 읽으며 생각하기를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을 하고 작가로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끝없이 고민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인생이 있다. 원하는 이상형과 결혼, 한강이 보이는 집 마련 등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본인만의 원하는 목표가 존재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꿈 없는 인생이란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가속 페달을 밟고 가는 것과 같다. 나 또한 바라는 이상이 있고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노력하며 살아간다.


한때 '이태원 클라쓰'라는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다. 박새로이라는 인물이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하루를 살아간다. 학생신분이니 당연히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려고 하던 중 어느 일진이 힘없는 학생을 괴롭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러자 그 박새로이라는 인물은 참지 못하고 그 친구를 체벌한다. 알고 봤더니 그 일진이라는 친구는 대기업 회장 아들이었고 박새로이의 아버지는 그 회사의 직장인이다. 학교 측에서 두 부모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통보하고 두 학부모가 학교에 오게 되었다. 그 회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면 없던 일로 해 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새로이는 그의 말에 수긍하지 않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그러면서 이태원에 자그마한 가게를 차리고 후에 사업을 하고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드라마 내용처럼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원한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이 이처럼 되기를 원하며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버티면서 끝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간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산 넘어 산, 터널이 끝나면 또 다른 터널이 존재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 계속해서 달려간다. 그리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을 비난하기 바쁘고, 남이 잘되기보다 자신이 잘 되기를 원한다.


망망대해 같은 세상이라는 바다에 각자 다른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향해를 한다. 가는 도중 풍량을 만나 휘청거리고 천둥을 만나 배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한다. 이러한 삶 속에 어떻게 희망을 꿈꾸며 살아갈까?


책을 즐겁게 읽기 시작하던 시절 '노인과 바다'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노인과 한 아이가 나와서 자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내용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노인 혼자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중 청새치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노인은 전력을 다해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절체절명의 순간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한다. 기분 좋게 집에 가던 중 상어 때를 만나 또 싸움이 시작된다. 노인은 죽을힘을 다해 상어를 무찌르지만 얍상한 상어는 조금씩 청새치를 물어뜯으며 자기들의 배를 채운다. 끝내 물고기를 뼈만 남은 채 노인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분명한 것은 노인이 땅으로 돌아왔을 때 주변인물들은 결과를 보고 감탄을 한다. 서로 몸으로 청새치의 길이를 측정하며 어떻게 잡았는지 서로가 의논을 한다.


노인은 피곤한지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은 만족을 했을까 상상해 본다. 치열한 사투 끝에 남은 것은 뼈 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험난한 세상에서 거대한 물고기란는 목표를 잡아 사투를 벌었지만 비난이라는 상어 때가 그것을 물어뜯어 앙상한 상태로 남아있다. 필자는 그 험악한 세상 속에 싸움을 한 사람에게 위로를 전해 주고 싶다. 비록 결과가 앙상한 뼈만 남더라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인생이라는 가치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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