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경기도 양평의 끝자락, 산등성이가 마을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형세의 ‘달빛 마을’에는 오래된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평생 흙을 만지며 고추 농사를 짓던 김 노인 부부가 야반도주하듯 마을을 떠난 건 지난봄이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 최민혁은 마을의 이물질 같은 존재였다.
최민혁은 이사 첫날부터 기괴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텃밭의 고추 지지대를 전부 뽑아버리고는, 마당 전체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검은색 차광막을 덧대 담장을 높였다. 마을 사람들은 담장 너머를 보려 까치발을 들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광막 너머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계 소리와 눅눅한 흙냄새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입술은 쉴 새 없이 달싹였다. 동네 마트 앞 평상, 빨래터, 경로당.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집 말이야, 밤마다 윙윙거리는 게 꼭 전기톱 소리 같지 않아? 내가 어제 새벽에 봤는데, 그 집 앞에 시커먼 비닐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라고. 모양새가 꼭 사람 팔다리 같더란 말이지.”
마을 청년회장 만석은 이 소문의 중심이었다. 그는 최 씨를 향한 적개심을 연료 삼아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를 조장했다. 사실 만석이 화가 난 건 최 씨의 정체 때문이 아니었다. 이사 혼날, 인사를 건네는 만석의 손을 무시하고 무심하게 대문을 닫아버린 최 씨의 그 오만한 눈빛 때문이었다.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토요일 밤, 마을 사람들은 만석의 집 평상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였다. 빗소리에 섞여 최 씨네 집 쪽에서 ‘콰르릉’ 하는 진동이 들려오자, 만석이 잔을 내려놓으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입을 뗐다.
“저 새끼, 분명히 사고 치고, 내려온 놈이야. 어쩌면 뉴스에 나오던 연쇄살인마일지도 몰라. 우리 마을 땅값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이러다 우리 중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정신 차릴 거야.”
술기운과 근거 없는 정의감이 만석의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는 빗속을 뚫고 최 씨네 집으로 향했다. 담장 아래 대추나무를 딛고 올라선 만석은 차광막 틈새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마당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흙 한 점 없이 매끄러운 시멘트로 뒤덮인 마당 위로, 수백 개의 고성능 마이크가 낚싯대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빗방울이 마이크 헤드에 부딪힐 때마다 ‘투둑투둑’ 하는 소리가 증폭되어 스피커를 통해 기괴한 울림으로 변했다.
그때, 거실의 커튼이 젖혀지며 푸르스름한 모니터 불빛이 마당을 비췄다. 만석은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갔다. 방 안의 광경은 지옥보다 더 끔찍했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모니터에는 마을 사람들의 은밀한 순간들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은밀하게 돈을 세는 이장, 남편 몰래 옆집 남자와 속삭이는 부녀회장,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담벼락에 매달려 방 안을 훔쳐보는 만석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까지.
“마음에 드십니까? 당신들이 만든 극장의 무대 말입니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축축한 손길이 만석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최 씨였다. 그는 우산도 없이 빗물에 젖어 있었고, 그의 눈은 모니터의 푸른 빛이 반사되어 번뜩였다.
“너, 이 새끼. 이거 다 도촬이야! 당장 경찰에...”“경찰?” 최 씨가 만석의 말을 끊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오라고 하세요. 그럼 저도 이 기록을 넘기면 됩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이 마을 사람들이 저를 두고 한 말들, 당신이 술집에서 퍼뜨린 그 악의적인 소문들. ‘인육을 먹는 괴물’, ‘시체를 유기하는 살인마’. 그 모든 말들이 이 녹음 장치에 고스란히 담겨 있죠.”
최 씨는 만석의 멱살을 쥐고 아직 굳지 않은 마당 구석의 질척이는 시멘트 바닥으로 그를 끌고 갔다.
“사람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저 씹어 뱉을 자극적인 고기가 필요할 뿐이지. 그래서 내가 당신들의 기대를 채워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소문냈던 그 ‘살인마’가 되어주기로 말이죠.”
최 씨가 주머니에서 작고 날카로운 메스를 꺼내 만석의 뺨을 가볍게 그었다. 뜨거운 피가 빗물과 섞여 시멘트 위로 떨어졌다.
“이 밑에 누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죠? 사실 여기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이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진짜 증거’가 생길 겁니다. 청년회장의 피 묻은 옷가지,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행방. 이보다 완벽한 할리우드 엔딩이 어디 있겠어?”
만석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최 씨의 차가운 손이 그의 입을 막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당신은 이 차광막 안에서 평생 내가 수집하는 ‘소문의 원천’이 되어야 할 거야. 마을 사람들이 당신이 죽었다고 믿으며 더 잔혹한 괴담을 만들어낼 때마다, 당신은 저 모니터를 통해 그 광기를 지켜보게 될 겁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은 평소처럼 평온했다. 다만 청년회장 만석이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최 씨의 집 마당 시멘트는 어제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매끄럽게 굳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최 씨가 만석을 시멘트 바닥 아래 묻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재미 삼아 던졌던 그 잔인한 말들이 정말로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그 ‘괴물’이 다음번엔 자신들의 비밀을 폭로할지도 모른다는 비겁함이 그들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검은 차광막 너머, 최 씨는 오늘도 헤드셋을 쓰고 마을의 비겁한 소음들을 수집하며 미소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