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그거 할 걸 그랬다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가슴 한구석이 콕콕 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짜증 나기도 한다.
내가 왜 안 했을까? 그때 왜 그랬을까?
이 십 대 초반에는 땐 이런 질문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무서웠다.
뭘 해도 후회할 것 같고, 뭘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아서.
젠장, 이러나 저러나 후회할 거면 그냥 숨만 쉬어야 하나 싶었달까?
그때는 나름의 철학도 있었다.
‘어설프게 할 바엔 안 하는 게 낫지!’
이게 내 젊은 날의 필살기 같은 자기 합리화였다.
완벽주의자 흉내를 내면서 실은 겁쟁이였던 거다.
뭘 했다가 망신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쪽팔리면 어쩌나, 이불킥 백만 번 예약되면 어쩌나… 이런 생각에 지레 겁먹고 포기한 일이 태산이다.
소개팅 앱을 깔았다가도 쫄려서 프로필만 만들고 삭제,
친구들 따라서 동아리 갔다가도 어색해서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탈퇴.
뭐, 일상이었다.
덕분에 내 머릿속에는 온갖 '만약에'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만약 그때 그 동아리에 쭉 나갔더라면?
인싸가 되어 대학생활을 불태웠을까?
만약 그때 그 과제,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학점이 더 좋아서 취업이 쉬웠을까?
이런 '만약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되었다.
아, 그 짐, 진짜 무겁더라.
근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시간이 지나니 생각이 변하더라.
서른 중반이 되어보니,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들이,
해봐서 후회하는 일들보다 훨씬 더 뼈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무슨 꼰대 같은 소리냐고?
들어봐.
내가 예전에 ‘아, 망했다!’ 싶었던 일들이 몇 개 있다.
대학 때 공모전에 나갔다가 예선 탈락한 거.
밤샘하고 PPT 만들고 난리 쳤는데, 결과는 ‘광탈’.
그때는 진짜 내 재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자괴감에 시달렸다.
한동안은 '내가 왜 쓸데없이 저걸 한다고 했을까?' 후회했다.
그런데? 그 실패 덕분에 내 약점을 알게 됐다.
발표 연습을 더 해야 한다는 것도, 자료 조사를 더 꼼꼼히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비록 상은 못 탔지만, 다음에는 뭘 보완해야 할지 정확히 알게 된 거지.
그 망함이 나를 성장시킨 거다.
뜨거운 냄비에 손 한 번 데어봐야 다음부터는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뭐, 이런 깨달음은 좀 아팠지만, 확실히 내 것이 되었다.
반면에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들은?
아, 이건 답이 없다. 그냥 미련만 남는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고, 아무것도 성장한 게 없다.
그냥 아쉬움 덩어리가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때 용기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돈다.
이건 진짜 ‘영혼의 빚’ 같은 거랄까.
갚을 길이 없으니 더 답답하다.
물론, 누가 그랬다.
"나이 들면 안전하게 사는 게 최고야.
괜히 새로운 거 시도했다가 망하면 쪽팔리지 않겠냐?"
일리 있는 말이다.
스무 살처럼 막무가내로 들이댈 수는 없지.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멘탈도 유리 멘탈이 될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도전을 멈추고 ‘안전빵’만 추구해야 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하고 후회하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젊었을 때처럼 막대한 돈을 들이거나 인생을 걸 필요는 없다.
소소한 도전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요즘 핫한 팝업 스토어에 혼자 가보기?
유튜브 보면서 요가 배우기?
아니면 한 번도 안 해본 요리 클래스에 등록하기?
이런 것들이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이 망할까? 아니지.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하고,
'아, 나한테 이런 면도 있었네?' 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망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의 숨은 보석을 찾아주는 지도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고 후회하자'는 게 '묻지 마 돌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시도하되,
설령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자는 의미다.
젊을 땐 실패가 '끝'인 줄 알았지만,
이젠 실패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안다.
마치 게임 오버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 같은 거랄까?
이 나이가 되어 생긴 또 하나의 장점은 '쿨함'이다.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예전엔 완벽 강박이 있어서 작은 실수 하나에도 밤잠을 설치고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그러니 '해서 후회할까 봐' 시도조차 못 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 뭐 어때?', '사람이 완벽할 순 없지',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안다.
이런 마음의 여유가 '하고 후회하자'는 나름의 용기 있는 결심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오늘 밤, 당신도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아있는
'만약에'라는 짐을 한번 내려놓고 가볍게 숨 쉬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오래전 배우고 싶었던 그림일 수도 있고,
썸만 타다 끝난 그 사람에게 뒤늦게라도 보낼 안부 메시지일 수도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다.
그리하여 언젠가 저 멀리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늘을 회상할 때,
우리는 '하지 않아서' 후회했던 일들보다는 '해서' 후회했던 일들을 통해 얻은
배움과 지혜를 더 많이 기억할 것이다.
아마 그 후회조차도 아름다운 삶의 흔적,
나를 성장시킨 발자국으로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한번 해보고 후회하자.
그 후회는 나를 더 단단하고 근사하게 만들 테니.
후회도 쌓이면 내공이 되는 법이다.
뭐, 그렇다고 매번 망하라는 소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