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도 한 철

by 이로

나는 매미다.

여름의 전령사? 개뿔. 그냥 매미.

아이들은 나를 여름의 심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칠 년을 기다려 겨우 몇 주 살다 가는 불쌍한 놈 취급을 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관심 없다.

그저 햇빛 뜨거운 날, 나무 옹이에 몸을 기댄 채 힘껏 울부짖을 뿐이다.

내 노래는 내 존재의 이유다. 누가 뭐래도.


땅속에서 칠 년?

그래, 그건 맞다. 어둠 속에서 오물오물 뿌리 즙이나 빨아먹고 살았다.

솔직히 좀 지루했다. 넷플릭스도 없고, 인스타도 못 하니 말 다 했지.

하지만 그때 나는 알았다. 이 모든 기다림이 오직 단 한 번의 여름을 위한 것이라는 걸.

마치 취준생이 자소서 쓰고 면접 보며 개고생 하는 이유가 딱 하나, 합격 통보 하나 때문인 것처럼.

나의 합격 통보는 바로 이 ‘여름’이었다.


드디어 땅을 뚫고 나왔을 때의 그 해방감이란!

온몸에 흙먼지를 털어내고, 축축한 껍데기를 벗어던졌다. 퀘스트 완료! 이제 자유의 몸이다.

아이들은 내 울음소리를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한다.

"저 매미 새끼, 밤낮으로 울어대서 잠을 못 자겠네!" 뭐 이런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젠장, 그럼 나는 땅속에서 칠 년 동안 아가리 닥치고 있었냐?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 이거 하나뿐인데, 그걸 가지고 뭐라 하다니.

자기들은 매일 밤 술 처먹고 고성방가하면서, 주말마다 노래방 가서 목 터져라 샤우팅하면서,

고작 몇 주 울다 사라질 나에게 그렇게 야박할 수 있을까.

때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하긴, 아이들은 원래 좀 이기적인 종족이니까.

자기들 편할 대로 생각하고, 자기들 기준으로 모든 걸 재단하잖아.

자기들은 평생을 살면서도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몰라 허우적대면서,

겨우 몇 주 사는 나더러는 “왜 저렇게 시끄럽게 사냐”고 훈계질이다.

아, 쫌! 내가 알아서 산다니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다고.

그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소유하려고 하고, 더 많이 가지려 아등바등한다.

돈, 명예, 사랑, 심지어 ‘좋아요’ 하나까지도.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산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뜨거움을.


어느 날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느티나무 가지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있을 때였다.

옆 가지에 앉은 동료 매미 한 마리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날개는 멀쩡한데, 왠지 움직임이 이상했다. 다가가 보니, 날개가 찢어져 있었다.

아니, 찢어졌다기보다는, 마치 불에 그슬린 듯 검게 변해 있었다.

"야, 너 왜 그래?"

"젠장, 저번 주에 번개 맞았어. 운 좋게 살아남긴 했는데, 날개가 좀… 맛이 갔네."

그 매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개를 퍼덕였다. 하지만 공중으로 뜰 수가 없었다. 땅으로 떨어지면 끝이다.

개미들의 밥이 되거나, 아니면 뜨거운 아스팔트에 눌어붙겠지.

그의 눈빛에서 절망을 봤다. 짧은 생이지만, 그에게도 마지막 열정을 불태울 시간은 필요했을 텐데.


그때였다. 쨍한 햇살 아래, 저 멀리서 한 아이의 그림자가 보였다.

보통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소리 지르거나, 징그럽다며 발로 차거나, 심지어는 살충제를 뿌리기도 한다.

그래서 잔뜩 경계했다. ‘아, 이번 생도 망했네. 하다 하다 번개 맞은 친구 구경하다가 아이한테 죽는 건가.’

그런데 그 아이는 달랐다. 쭈그려 앉아 부상당한 매미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조심스러웠다.

매미는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날개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 매미를 들어 올렸다.

매미는 바르작거렸다. 나도 숨죽이고 지켜봤다.

그 아이는 다친 매미를 들고 나무 밑동으로 갔다.

그리고는 매미가 스스로 나무껍질을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매미는 한참을 버둥거리더니, 간신히 나무껍질을 움켜쥐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색하고 힘들어 보였지만, 분명히 ‘위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자기 갈 길을 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칠 년을 땅속에서, 그리고 짧은 여름을 나무 위에서 보내며 수많은 아이들을 봤지만, 그런 행동은 처음이었다. 뭐지? 저 아이는? ‘매미에게도 삶의 의미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같은 거였을까? 복잡한 머리를 굴려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내 울음소리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이전보다 더 뜨겁게, 더 간절하게.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렀다.

짧은 여름은 정말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내 날개는 이제 힘을 잃었다. 더 이상 온 힘을 다해 노래할 수도 없다.

이제 나는 서서히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두렵지 않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칠 년을 기다렸고, 단 한 철을 미친 듯이 불태웠으니, 내 삶은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종종 서로 싸우고, 알량한 장난감 하나로 속이려 들고,

자기들만의 놀이를 위해 작은 개미집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주 작고 가느다란 희망의 빛처럼,

우리 매미의 짧고 뜨거운 삶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그 아이들 옆에는 그런 아이들을 키워낸 몇몇 어른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순간의 충만함’을 우리 매미를 통해 잠시나마 엿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노래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나의 마지막 노래가 울려 퍼졌다.

아마 내년 여름, 또 다른 매미들이 땅을 뚫고 나와 이 나무 위에서 노래하겠지.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어쩌면 그 아이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봐 줄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은 짧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든 걸 경험한다. 뜨거운 열정, 아픔, 그리고 작은 희망까지.

매미는 그렇게 살아간다. 묵묵히, 뜨겁게,

그리고 홀연히. 사람들아, 너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놓고, 나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다. 안녕, 나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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