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새겨진 나이테

by 이로

버스 창밖으로 공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저 나무는 나보다 오래 사는 걸까?'

정답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식물학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나무는 매년 죽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니까.

나무는 봄마다 새 잎을 틔운다.

여름 내내 맹렬히 빛을 빨아들여 몸을 불린다.

가을이면 모든 걸 비워내고, 겨울의 혹독함을 견딘다.

그리고 이듬해 봄, 다시 태어난다.

그 치열했던 한 해의 기록을 제 몸 안에 고스란히 새겨 넣는다.

그것이 바로 나이테다.

비바람 거셌던 해는 좁고 촘촘하게, 햇살 좋고 평온했던 해는 넓고 여유롭게.

나이테는 단순히 나이를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한 해 한 해를 어떻게 살아냈는지에 대한 장엄한 역사책인 셈이다.


내 몸의 나이테는 어디에 새겨져 있을까.

거울을 보면 먼저 눈가의 주름이 보인다.

젊은 날에는 없던 그 선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웃고, 또 얼마나 많이 찡그리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먹고 사는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밤의 흔적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터뜨렸던 환한 웃음의 기록이다.

또는 드라마 보면서 펑펑 울었던 눈물의 흔적일 수도 있다.

이마를 가로지르는 깊은 선은 한평생 짊어졌던 책임감의 무게일 테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뜨겁게 고민하고 아파했던 시간의 증거다.

솔직히 흰머리는 좀 속상하다. 뽑을까 말까 매번 고민한다.

손등에 피어난 검버섯은 또 어떤가.

쉼 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쓸고, 닦고,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밥을 대접하던 따뜻한 시간의 훈장이다.

물론 내 눈에는 '아, 나도 이제 찐 어른이구나' 하는 증표 같기도 하다.

젊은 날의 나는 매끈하고 흠 없는 것을 동경했다.

구김 하나 없는 새 옷처럼, 상처 없는 깨끗한 피부처럼, 실패 없는 반듯한 인생을 꿈꿨다.

인스타 필터로 주름 하나 없이 뽀샤시한 내 모습을 보며 만족했었지.

근데 말이지, 밋밋한 표면에는 이야기가 담기지 않는다.

깊은 상처가 아문 자리에 더 단단한 새살이 돋아나듯,

나를 진짜 나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세월의 흔적들이다.

옹이가 박이고 거친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진 채로도 꿋꿋이 서 있는 늙은 소나무가

어린 묘목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멋진 소나무 사진 옆에 내 사진을 붙여놓고 싶은 심정이다.


쇠락이 아닌 숙성

나는 작년의 내가 아니다.

작년의 기쁨과 슬픔을 겪어낸, 그 위에 새로운 한 겹의 경험을 덧입은 새로운 존재다.

나무가 묵묵히 지난날의 나이테를 품고 더 높이 자라나듯,

나도 어제의 상처와 오늘의 지혜를 끌어안고 더 깊어진다.

이게 바로 나이 듦의 진짜 가치다.

쇠락이 아니라 숙성이고, 소멸이 아니라 완성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마치 잘 익은 과일처럼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을 서글퍼하지 말자.

내 몸의 나이테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주름과 흔적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주자.

'참 애썼다, 대견하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주자.

세상 그 어떤 젊음과도 바꿀 수 없는 깊고 아름다운 무늬가

바로 나라는 사람의 역사이며, 그 자체로 빛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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