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익숙한 소리.
나는 늘 그렇듯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멈칫. 벚꽃 사진이었다.
활짝 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벌써 봄이네.' 중얼거렸다.
지하철 창밖은 아직 회색빛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스물여덟. 사회가 정한 '적령기'엔 한참 못 미치는 나이.
그렇다고 마냥 어린것도 아니어서 이제 슬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
내 인생은 늘 미지의 상자 같았다.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풀어봐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상자는 꽤 튼튼하게 묶여 있었다.
끈을 풀고 매듭을 푸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낑낑대며 상자를 열자, 텅 빈 공간에 달랑 쪽지 하나.
실망스러웠지만, 어쩌겠나. 이 작은 종잇조각이 내 삶의 해답이라는데.
쪽지에 적힌 글자들은 흐릿했다. 마치 고대 문자 같기도 하고, 술 취한 사람이 휘갈겨 쓴 낙서 같기도 했다. 해독하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밤늦게까지 끙끙 앓으며 씨름했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봤다.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내 얼굴.
'아, 나 늙었네.' 그 순간이었다.
글자들이 선명해지는 듯한 착각.
"행복하라"
겨우 이 몇 글자였다. 이 단순한 문장 하나를 위해 내 젊음의 상당 부분을 갈아 넣었단 말인가.
허탈했다. 그동안 나는 행복했을까? 지금 행복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기 위해 헤매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뇌가 갑자기 과부하 걸린 듯 윙윙거렸다.
쪽지를 다시 접어 상자 안에 넣었다. 풀었던 끈을 다시 묶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열어보지 않은 것처럼, 모르는 척 외면하며 살기로 했다.
어쩌면 그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걸 알아서 피곤해진 건 아닐까?
가끔은 무지(無知)가 축복이 될 때도 있으니까.
그 순간, 상자의 끈에 적힌 아주 작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작아서 스쳐 지나갈 뻔했다.
"행복하게 해 주어라"
뭐지? 아까는 분명 '행복하라'였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행복하게 해 주어라.'
이건 또 다른 명령인가? 아니면 '행복하라'는 명령의 다른 버전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행복하라'는 명령의 대상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행복하게 해 주어라'는 대상이 다른 누군가이지 않은가.
어딘가에 행복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넌지시 던지는 말 같기도 했다.
텅 빈 지하철 칸에 혼자 앉아 중얼거렸다.
"누구를 행복하게 해 주라는 거지?" 답은 없었다.
다만, 상자 끈에서 희미하게 퍼져 나오는 종이 냄새가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상자를 닫았다.
이번엔 풀지 않을 작정으로 더 단단히 묶었다.
아마 평생 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답은 상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상자 밖, 그러니까 내 삶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 흩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들이 스쳐 지나갔다.
삑, 삑, 지하철 문이 다시 열리고 닫히는 소리.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역을 나왔다.
상자 속 쪽지의 의미를 평생 해독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해독 불가능함이 주는 자유로움이 진짜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상자 밖에 행복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