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by 이로

삐빅, 삐빅. 알람 소리가 얄미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5분만 더..." 중얼거렸다.

아침 7시.

이 시간은 나에게 '새벽'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그게 뭔 소리? 나는 벌레였다.

아침잠 많은 벌레. 일찍 일어나서 잡아먹히느니,

늦잠 자고 평화롭게 사는 게 훨씬 이득 아닌가?


나는 태생이 올빼미족이다.

새벽 2시는 넘어야 눈이 말똥말똥해지고,

아침 햇살은 그저 눈꺼풀을 짓누르는 고문 도구일 뿐이다.

친구들은 늘 나에게 "너 그러다 백수 된다", "세상 어떻게 살래?"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야, 벌레 입장에서 생각해 봐. 일찍 일어나는 새한테 잡아먹히는 게 좋냐? 늦게 일어나서 살아남는 게 좋지!"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거실을 쓸고 닦으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일찍 일어나서 뭐 하나. 잠이나 더 자지.'

엄마는 내가 늦잠을 자는 날이면 꼭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일어나! 해가 중천에 떴어!" 하고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세상의 모든 기준이 왜 다 '아침형 인간'에게 맞춰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에 일하는 사람은 그럼 성공 못 한다는 거야?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자습 시간,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해 졸다가 선생님께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지!"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속으로 반항했다.

'저는 밤에 공부가 더 잘 되는데요? 왜 꼭 아침에 공부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게 곧 반항으로 비칠 테니까.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아침형 인간' 콤플렉스는 더욱 심해졌다.

성공한 사람들의 루틴을 보면 죄다 새벽 기상, 새벽 운동, 새벽 독서였다.

마치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루저가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이른 아침 학원에 가는 길,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이 사회는 정말이지 '아침형 인간'에게만 유리한 곳이구나.

밤에 에너지가 넘치는 나는 어쩌라는 말인가.


그날도 어김없이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오전 11시.

아차,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허둥지둥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친구들은 모닝수다에 바빠서 내 사과는 허공에서 맴돌았다.

"너 또 늦었냐?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 잡는다는 말이 맞다니까!"

친구의 말에 나는 "야, 너도 벌레 입장에서는 생각해 봤냐? 새한테 잡아먹히는 벌레가 일찍 일어나서 좋을 게 뭐 있냐? 늦잠 자야 살아남지!"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헛소리야?"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생각해 봐. 모든 기준이 새한테 맞춰져 있잖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은 새의 입장에서나 좋은 말 아니겠냐고.

벌레는 늦잠 자고 푹 쉬어야 안전하다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야? 모든 기준이 '아침형 인간'에게 맞춰져 있잖아.

밤에 활발한 사람들은 그럼 어쩌라는 거야?"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래, 이게 바로 역지사지 아니겠는가.


우리는 너무 쉽게 '일찍 일어나는 새'의 입장만 생각했던 거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실패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밤에 더 집중이 잘 되고,

밤에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굳이 나를 '새'에 맞추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여전히 아침잠이 많아 지각할 때도 있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어 다음 날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벌레'처럼 늦게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찾고 있으니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세상의 편향성에 물들어 버리는 것 같다.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 내가 익숙한 방식이 전부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수많은 '벌레'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혹시, 우리의 '벌레'를 외면하고 '새'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너무 '새'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다양한 '벌레'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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