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착한 게 제일 최악이라는 말이 있다. 내 얘긴가? 들을 때마다 못내 미심쩍어 쉽게 흘려버리지 못하는데 결단코 나는 이 경우에 해당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정말이다. 한번 들어보라. 내가 여기에 속하는지 아닌지. 가능한 많은 이들의 갑론을박이 필요하다.
토요일 새벽 2시(엄밀히 말하면 일요일 새벽 2시다), 혼자 맥주 두 병을 까며 꼬꼬무 재방을 보고 있는데 카톡 메시지가 울린다.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헉! 이 시간에 우리 집 앞에 누가 왔다 갔다구?
'저,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거든요, 내일은 일요일인데다가 이 운동화는 사실 신어도 그만, 안 신어도 그만이예요. 하루쯤 조금 작은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고 뭐 큰 일 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추운 새벽에 일하시게 해서 미안해요'
내일 아침에 집 안으로 들여놓을까 지금 당장 들여놓을까 망설이다가 아까아까 잠든 남편과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현관문을 열고 나가 '세탁특공대'가 문고리에 걸어두고 간 운동화 3켤레와 남편의 셔츠, 내 청바지를 집 안으로 들여오며 속으로 사과했다. 복도의 찬 공기에 깜짝 놀라서 더 그랬다.
하지만 정작 이 말도 안되는 노동을 주문한 사람은 나다. 동네 세탁소 여러 곳을 마다하고 직접 맡기고 찾으러 가는 수고를 덜 뿐 아니라 퀄리티 좋고 깔끔하게 포장까지 한 세탁물이 내가 잠든 사이 우리집 문고리에 딱 걸리는 마술을 요청한 사람. 뻔히 짐작되는 불합리한 노동을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간주하고 당연한 내 편리로 일상화한 사람.
새벽배송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나는 사람들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걸 꼭 왜 새벽에 받아? 미리 계획하고 미리 주문하고 미리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새벽에 배송하는 사람들은 생활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는 세상 모르고 잘 거면서 타인한테는 왜 그 시간에 노동하라고 요구하는 거야? 겨우 몇 천원이라는 돈이 그걸 당연하게 만들 수 있어? 이건 말도 안돼.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일반배송에 새벽배송, 배달 앱 없이는 생활이 곤란하다고 느끼는 1인이 되었다. 심지어 상품이 누락되거나 시간이 지연되면 여지 없이 고객 센터에 항의 전화를 하고, 재촉 전화를 하는 깐깐한 VIP 고객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지금 나를 응대하는 고객 센터의 직원이 대체 무슨 죄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갑과 을로서 각자의 배역에 충실한 역할극을 한다는 마음으로 뻔한 대사를 쳤다.
내가 세탁특공대를 이용하지 않는 쪽이 배송 하시는 분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까?
그건 대단히 높은 확률로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낮과 밤을 맞바꿔야 하는 배송기사들의 삶을 순순히 받아들여라? 그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이용하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면서 이용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설프게 착해서 본인도 괴롭고 상대도 괴롭게 만드는 그런 부류일까? 아무라도 속시원히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옳았다고 하건 틀렸다고 하건 100% 수용할 용의가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새벽에, 새 것처럼 하애져서 돌아온 운동화들과 옷걸이에 정확히 이등분으로 걸쳐진 나의 오래된 청바지, 그리고 남편의 스트라이프 린넨 셔츠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새벽 배송 기사도 아닌 주제에 새벽 3시 30분이라는 시간에 말도 안되는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