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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에게 숨통이 되고 싶었다.

by 정희승

10평도 안 되는 작은 집.

안방, 건넌방, 재래식 부엌이 붙어있는 작은 집에 사는 우리 가족 여섯 명은 웃는 날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들.


가족을 폭행하며 억압하는 아빠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들은 웃지 않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할머니와 말없이 일만 하며 웃지 않는 엄마, 밥 먹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오빠들.


숨 막히는 집, 숨을 참고 있는 가족들.



할머니는 집에서 투명인간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요구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 아빠와 할머니를 피하는 엄마.

씻기를 싫어하는 할머니 옆에 있으면 언제나 쿰쿰한 냄새가 났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말도 밉게 했던 것 같다.

오빠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걸 보면.


그래도 나는 그런 할머니가 가여웠다.

왜, 할머니도 가족인데 모두 할머니를 싫어하는 걸까.

미운 말을 해도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인데.


외로운 할머니에게 말을 건네는 가족은 나뿐이었다.


가끔 짜증내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손녀를 사랑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가족들보다 손녀는 당신의 머리도 감겨주고 팔짱 끼며 다정했으니까.



어린 시절 큰오빠의 기억은 공부를 잘한다는 것.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아빠에게 제일 많이 맞았다는 것뿐이다.


아빠는 큰아들 성적만은 엄격하게 관리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매를 들었고, 불시에 물어보는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머리를 때리고 발로 가슴을 걷어찼다.

그에게 자식은 동물보다 못한 존재였다.

아무 때나 때려도 괜찮은 존재.

아빠에게 수시로 맞는 큰오빠는 사자가 무서워 도망가지 못하는 토끼처럼 늘 벌벌 떨고 있었다.



작은오빠에 대한 기억은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작은오빠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 말도 없었다.

형 옆에만 있는 동생.

형만 바라보는 동생.

말없는 둘째에게 부모 또한 말을 걸지 않았다.

둘째가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부모는 상관하지 않았다.

무관심이 가장 힘들었을까.

작은오빠는 불 꺼진 방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늘 외로워 보이는 아픈 손가락.

청소년 시절 방황하는 작은오빠를 보며 난 늘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항상 그늘져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는 엄마.

집에서도 밖에서도 땅만 쳐다보는 엄마 얼굴은 언제나 굳어 있었다.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일만 했다.

먼지날 것도 없는 좁은 집을 매일 쓸고 닦고, 부엌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

아빠가 있는 주말이면 엄마는 더 부엌 부뚜막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안방과 건넌방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그 집에서 나 혼자 뿐이었다.

가족은 식사 시간만 안방으로 모였다.

교자상을 펼치고 수저를 놓고 부엌에서 엄마가 주는 음식을 나르면 가족이 모인다.

엄마는 교자상으로 오지 않고 쟁반에 밥과 국을 따로 놓고 혼자 드셨다.

밥을 치우고 나면 아빠를 제외한 가족은 다 건넌방으로 갔다.

안방에 혼자 남은 아빠는 티브이를 보다가 나를 불러 안마를 시키곤 했다.


그 작은 집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였다.

오빠한테 말 걸고 할머니에게 말 걸고 부엌에 있는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종알종알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적막함이 싫어서, 숨 참는 가족이 가여워서, 웃지 않는 마네킹 같은 가족이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다.



나는 우리 집 수호천사가 되고 싶었다.

악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에게 온기가 되고 싶었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작은 숨결이고 싶었다.

우리라도 웃으며 살자고.

우리라도 말하며 살자고.


오손도손 다정한 가족 모습은 티브이 상자 안에 있는 영상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빠와 사는 우리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까.


그늘진 오빠들도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니 오빠들은 막내를 불러 술 한잔 하는 사이로 변했다.

착한 막내, 밝은 막내, 심부름 잘하는 막내를 오빠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제일 먼저 소개해주는 오빠들.

친구들을 만나도 동생을 불러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오빠들.


우리는 어두웠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성인이 되어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사이좋은 남매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의 성폭행을 고백한 후 오빠들이 나를 외면하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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