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 살겠다. 어제도 잠을 못 잤어.
아빠가 요즘 이상하다. 새벽에 화장실 갔다가 안방을 못 찾더라. 낮잠 자고 일어나도 횡설수설하고.
네 아빠 치매 걸리면 난 데리고 못 산다. 요양원에 버릴 거다."
오늘 엄마의 '다짜고짜 닥치고 내 말 들어.' 전화 내용은 아빠 치매 증상이다.
이건 문제가 심각한 거다.
아빠 때문에 평생 고생한 엄마 인생의 노년까지 망치면 안 된다.
"엄마, 내가 갈게.
치매센터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강서구 치매센터를 알아본다.
예약하고 부모님을 모시러 친정으로 간다.
'가만있어보자.
10시 예약이니 검사하고 친정에 모셔다 드리고 나면 석이가 올 시간인데 어쩌지?'
우선 석이가 학교 갔다 오면 통화하기로 하고 친정으로 향한다.
시간 맞춰 외출 준비를 마친 부모님을 모시고 아파트 현관 앞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아빠는 늘 앞자리에 앉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앞문을 여시고 엄마는 자연스럽게 뒷문을 연다.
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는 내게 아빠가 말한다.
"안전벨트가 안 채워진다.
네가 해줄래?"
안전벨트를 채워드리려 줄을 당기며 아빠 가슴과 배에 손이 스쳤다.
'윽...'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 폐경기인데 임신한 것처럼 속이 메슥거리며 구토가 올라온다.
'왜 이러지?'
아침밥도 안 먹고 물 한잔 먹었을 뿐인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잠시 생각하다 얼른 안전띠를 고정한다.
치매센터는 친정에서 멀지 않았다. 차로 20분 거리. 검사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석이가 올 시간에 맞출 수 있다.
안내에 따라 신청서를 작성하다가 앉아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온 김에 엄마도 검사받아봐요."
신청서를 두 장 작성한다. 두 분 검사가 끝나고 보호자도 들어오란다.
"어머님은 정상이시고요.
아버님은 치매 초기입니다.
치매는 초기에 약물 치료가 가능합니다.
보통 중기가 넘어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 그러려니 생각하시는 거죠.
그래도 아버님은 따님 덕분에 빨리 검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갑자기 의사 선생님께 칭찬을 듣는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딸로 포장된 나를 보며 두 분 표정이 흡족하게 변한다.
"딸이 최고다.
의사도 말하잖니. 돈만 주고 거들떠도 안보는 자식하고 다르지.
역시 아들보다 딸이 있어야 해.
네 오빠들 봐라.
생활비만 보내면 할 도리 다 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뒷방 늙은이 취급이나 하고.
네가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지."
"매주 와야 한다는 데 오실 수 있겠어요?"
"엄마는 못 온다. 허리 아픈데 어떻게 아빠를 모시고 버스 타고 걸어 다니냐.
네가 해야지.
핸드폰도 못 만지는 네 아빠가 길 잃으면 어쩌냐."
주 1회. 그 정도는 괜찮겠지. 석이한테 조금 기다리라 하면 되겠지.
친정에 부모님을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정 전화가 울린다.
차에 뭘 두고 내리셨나 생각하며 전화를 받는다.
"어, 엄마."
"깜박하고 아까 말을 못 했네. 내일 아빠 서울대 병원 검사 날이다.
내일도 수고 좀 해야겠다.
미리 가야 하니까 8시까지 집으로 와라.
주차장에서 전화하면 우리가 내려갈게.
내일 보자."
뚜뚜뚜뚜.
당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엄마.
내일 아침. 회사 출고가 밀려 있을 텐데 어쩌나...
집에 도착하니 석이는 벌써 유니폼을 갈아입고 앉아 있다.
"엄마, 늦겠어. 빨리 출발해야 돼."
앉지도 못하고 물통과 간식을 챙겨 허둥지둥 축구장으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