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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Oct 23. 2024

네가 좋아하는 일은 돈이 안돼

너 돈 없이 살 수 있어?

02.


사회적 안전 마지노선을 넘지 않고 규율과 규칙을 어기지 않고 충실히 살아온 나였지만, 이런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들은 꽤 많이 있었다. 


대부분 돈이 안 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원래는 요리를 하고 싶어서 관련 특수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완강하게 반대하셨다. 너무 이른 결정이고, 돈이 안되고,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나마 타협점으로 그 꿈이 대학에 가서도 변치 않는다면 하게 해 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긴 했지만 결국 변한 건 나였다. 


그리고, 그다음 꿈은 모르겠다. 내 꿈이 아니었다.


그 무렵 부모님이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았고, 그때부터 돈을 많이 벌어야 이 전쟁이 끝나겠다는 생각에 나는 자발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이 비단 부모님의 뜻만은 아니었다.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는 갸륵한 마음과 시도 때도 없이 날 긴장하게 만드는 갈등 상황을 원천차단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최근 어느 드라마에서 "세상에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돈이 모자라서가 아닐까 생각해 봐"라는 대사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머리가 띵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인 것 같아서 말이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일은 돈으로 해결되곤 하니까. 그리고 아마도, 그런 생각은 꽤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다짐과는 반대로 내 꿈은 자꾸 돈이 안 되는 곳으로 향했다. 사진을 찍는 것, 글을 쓰는 것, 빵을 굽는 것, 영상을 찍는 것, 뜨개질을 하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 산책을 하는 것.


아이러니하게 장래희망 조사서에는 약사, 교사, 선생님, 공무원, 회계사를 번갈아가며 적어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고, 누군가의 꿈을 내 꿈인 양 적어낸 결과, 나는 무려 10년을 방황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방황 끝에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돈이 아닌 내 흥미와 적성을 따르자니 즐겁긴 하다만, 치고 올라오는 젊은 피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습지만, 지금에서야 나 자신으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이따금씩 웃음이 새어 나온다.






"너 돈 없이 살 수 있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평생 NO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산다는 것은 무기 없이 맨몸으로 전쟁터에 던져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네가 좋아하는 일은 돈이 안돼."


이 말에 대해서는 글쎄, 아쉽긴 하지만 두고 봐야지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내가 지금까지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자본을 창출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편견이나 반대를 무릅쓰고 당당히 성공한 누군가가 있기에 난 지금의 꿈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일? 누군가가 버는 돈에 비하면 푼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시험에서는 확실한 정답이 존재하지만, 인생을 가는 방향이나 속도에는 정답이 없다. 있다면 그건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 남들과 비교하며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주의 사회인 한국에서는 유독 그 정답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 중하나였지만, 뭐랄까. 좀 더 시야를 넓히면 그 정답대로 살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삶을 온전히 겪지 않고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스스로 정의한 정답에 따라 살자는 것이다. 나처럼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때로 다르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하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누구는 연봉이 얼마 올랐고, 성과급을 얼마 받았고, 대리를 달고, 과장을 달고, 집을 사고... 이런 소식들에 여전히 흔들리는 나지만, 그냥 흔들릴 때 흔들리더라도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내 인생이 특별하다고 여기기로 했다. 이것이 정신승리라 말해도 좋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 팍팍한 세상에 내 정신하나 똑바로 잡은 것만 해도 장하지 않은가. 비교 중심 사회에서 꺾이지 않는 정신이란 돈보다 더 얻기 힘든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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