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Oct 30. 2024

아빠는 어떻게 30년 동안 일을 했어?

나는 한 달도 이렇게 힘든데

03.


나는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 결국 20대 중반이 한참 넘어서야 처음으로 회사 생활을 해 볼 수 있었다. 6개월짜리 계약직으로 말이다. 사실 계약직이기 때문에 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기한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 반대였다.


사업 관리 보조 업무라고 해서 갔지만, 실상 내가 메인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했고, 그 위의 사수는 회사에서 빌런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짐작컨대, 아무도 그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 위치에 가게 된 것 같았다.


일도 일이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처음 해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 집에만 오면 우울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렇게 말했어야 했나? 따위의 사소한 고민들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너무도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중고대학교 모두 집 코앞에서 다녔던 나는 출퇴근 왕복 2시간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출근길 지하철의 인구밀도는 모두들 말 안 해도 알거라 생각한다. 


쾌적한 삶을 살다가, 출퇴근할 때마다 푹 젖어버리는 삶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 달 정도는 퇴근 후 매일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퇴근을 했는데 입맛도 없고 그냥 그대로 입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푹 엎드렸다.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내가 너무 한심하고 또, 힘들어서 여느 때와 같이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줄줄 나왔다. 


그러고 좀 진정이 됐을 무렵 아빠게에서 마침 전화가 왔다.


아빠에게 말했다. 

-나 너무 힘들어.


그랬더니 아빠는 자신이 ktx로 매일매일 출퇴근 한 적도 있다면서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회사를 다녔는지 구구절절 말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닌데, 그냥 우리 딸 힘들구나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인데.


듣다가 눈물도 식고, 별 생각이 없어졌을 때쯤, 또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이런 걸 20년 넘게 했어?

-그냥 했지.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전화를 끊고 아빠말을 곱씹어 보니, 아빠는 자기의 가족 중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처음 나타났기 때문에 자기가 위로받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엄마는 가정주부였고 아빠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매일매일 회사에 나가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깊이 이해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학생으로서 평생 살다가 누군가가 챙겨주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해야 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동시에 아빠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책임져주는 사람이 아빠 말고 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나면서 또 눈물이 났다.


나도 책임져야 할 것이 생기면 열심히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아빠처럼.






결과적으로 난 울며불며 끈질기게 견딘 끝에 6개월의 계약직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극강의 내향형인 내가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이지 지옥 같았지만, 그 경험이 거름이 되어 그다음 회사를 갈 수 있었고, 또 새롭게 성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앞으로 몇 년이나 일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아마 기대수명을 생각했을 때 아빠보다 더 길게 일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