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결혼.
말만 들어도 복잡한 단어다.
20살 때는 30살쯤 되면 알아서 결혼할 사람이 나타나서 적당히 결혼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게 타이밍 좋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물론 나는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부모님의 반대(...)라는 진부한 난관에 부딪혔고, 그 덕에 지금의 남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마음은 있어서 헤어지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할 이야기가 많지만, 간략하게 말해서, 남자친구와 나는 학벌과 집안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내심 이루어질 수 없는 결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놓을 수가 없다. 이미,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별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결혼에 대한 압박이 느껴지니, 자꾸 남자친구를 닦달하게 된다. 거기에 주변 친구들의 남편과 남자친구와도 자꾸 비교하게 되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이것저것 계산적으로 따지는 나를 발견한다.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있는데 상황이 자꾸 나를 시험하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더욱 남자친구를 닦달하게 된다. 나는 여기 있을 테니 네가 그 격차를 메꿔서 우리 부모님을 만족시켜 달라는 못된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거의 첫 연애였기 때문일까,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나는 연애 초반에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실수 1. 연애 초에 연애 사실을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실수 2. 남자친구의 학력을 발설했다.(부모님이 이렇게 싫어하실 줄 몰랐다.)
어느 날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 너 남자친구 생겼냐?
- 어~ 생겼다 했잖아~
- 걔 대학도 안 나왔다며? (비꼬는 말투)
나는 남자친구가 들을까 봐 황급히 음량을 낮추었지만 남자친구는 이미 다 들은 듯했다.
그 이후로 아빠는 내게 남자친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정확히는 내 남자친구를 딸의 남자친구로서 인정해주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고졸이라는 그 타이틀 하나 때문에 말이다.
오늘은 아빠가 전화 와서 말했다.
- 진주 언니 기억나? 그 언니는 아들이 벌써 7살이라네
- 언니가 몇 살이었지?
- 40살이던가.
- 그럼 33살에 낳은 거니까 난 3년 남았네~
- 그렇지.. 아빠 친구는 벌써 손주 봤대.
- 좋으시겠네
- 근데 너는..
- 아빠 난, 지금 직업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해~
- 그래, 그렇지.
20살이라면,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겼을 대화.
하지만, 내 앞에 결혼적령기라는 거대한 허들이 있어서 그런지, 어느새부터인가 이런 대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저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금의 남자친구는 없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게 내심 상처가 되었지만, 이제는 나도 좀 무뎌졌나? 싶다가도 여전히 아빠에겐 조금 서운하다.
반대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클리셰는 어디서든 맛볼 때마다 얼마나 달콤한지.
그 달콤함의 이유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일까. 왠지 씁쓸해진다.
사랑과 결혼은 왜 같지 않을까?
난, 결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