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무에 도전을 하게 된 후로 나는 무수히 많은 "못하는 나" 자신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항상 옳다고 하는 길만 걸어왔던 내게, "못하는 나"는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하는 나를 견디지 못하겠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못하는 나를 "봐줄 만한 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과제에 몰두했다. 그렇게 몰두한 과제의 결과물이 남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결심이 나 자신의 수준도 가늠하지 않고 퇴사를 결정할 정도로 가벼웠는가?
혹은 내가 원하던 수준이 되지 않아도 그걸 극복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나?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정말 내가 하고 싶다 생각하던 일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고 싶다 생각하던 일을 하기 위해 퇴사를 한 게 아니라 퇴사를 하고 싶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만들어 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나의 결심을 굳힌 한 가지 가정만은 아직 건재하다.
야근을 하면서까지도 별로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지금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일이 맞다. 실제로 남들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성장하고 싶어서 억장이 무너져도, 가슴 한 편이 꽉 막힌 듯 답답해도, 때로는 속이 텅 빈 듯 불안해도 4개월간 포기하지 않았다.
예전에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잘하는 일을 선택하라는 어떤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잘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잘한다고 인정받으면 결국은 그 일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은 잘하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좋아하기만 하는 이 일을 계속 붙잡고 있어도 될지가 무척 두렵다.
또 어떤 사람은 끝까지 꾹 참고 견디면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고 했다. 지금 이 불안한 감정을 뒤로하고 묵묵히 실행해 나간다면 원하던 결과가 내 앞에 와있을까?
불안한 마음을 못 이겨 사주와 점성술도 보았지만 내년에 취업운이 좋지 않을 거라는 말 뿐이라 더욱 불안해졌다. (물론 재미로 본 것이라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는 나 하기 나름이라고는 생각한다.)
그 불안함 마저 품에 안고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은 해낼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지금의 내겐 아마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4개월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그러나 30살이라는 나이가 자꾸만 나를 재촉한다.
- 너 벌써 30살이야.
- 30살에 새로운 직무로 완전히 신입으로 다시 시작한다고?
- 그럼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언제 낳고, 또 돈은 언제 모을래?
- 지금 벌써 집사고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 애들을 좀 봐.
- 너의 선택은 결국 비겁한 도피였던 거야.
-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을 볼 때가 됐어.
이토록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묵묵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내 선택에 대해 내가 질 수 있는 최대의 책임이기 때문에,
비겁한 도피자보다는 용기 있는 챌린저로 남고 싶기 때문에,
방황하는 모든 청춘, 늦깎이들에게 이 글이 공감이 됐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크게 위로받고 있는 글을 아래에 덧붙였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림은 결코 남들에게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건 결코 남들에게 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매번 새로이 발견할 용기를 잃지 않은 것이다.
서른이 넘도록, 심지어 여든이 넘어서도, 아직 매 순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평생 열어놓을 줄 아는 지혜롭고 용감한 존재가 아닐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