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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Nov 13. 2024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될까?

현실과 이상 사이의 비겁한 저울질


05.


원래는 이 주제에 대해 쓸 생각이 없었지만, 얼마 전 일이 있어서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흔하디 흔한 결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혼에 대해서는 유독 다들 스스럼없이 말을 얹기 좋아하는 것 같다.


남자가 아깝네, 여자가 아깝네, 누가 돈을 보고 결혼했네, 집안이 누가 좀 덜한지, 혼수는 얼마짜리인지, 집은 최소 어디에 몇 평 정도 되어야 하는지, 이왕이면 전세 말고 매매로 해야지, 그 집안은 집이 몇 채고, 유산으로 얼마를 받을 수 있고, 결혼식장 대관료가 얼마였고, 드레스가 얼마고..



그런 현실적인 말들에 눌려서 나도 모르게 계산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게 싫었지만, ‘나’의 행복에 어느 선택지가 좋을지 고민이 되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남자친구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심지어 소개해준 친구도 내가 연애를 하도 안 하고 있으니, 연애만 해봐라 하고 소개해준 것이었으니, 이렇게 진심이 될 줄 몰랐을거다. 내 친구 중에서는 너 정도면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지 않냐며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조차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도저히 지금 남자 친구를 놓을 수가 없다.


지금 남자친구가 없는 미래가 상상이 안된달까?




남자친구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고졸이라 초봉이 2400 정도였던 것 같지만, 낮게 시작하는 만큼 연봉 상승률도 높아서 3년을 막 넘긴 지금은 3천 중후반으로 올랐고, 올해가 지나면 또 인상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성과급도 많을 때는 300씩 주기도 하니 꽤 잘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문젠 남자친구가 모은 돈이 내가 모은 돈의 5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주변 또래에 비하면 많이 모은 것은 아니지만, 남자친구는 꾸준히 일한 것에 비해 너무 적게 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남자친구의 변론은 이것이었다.


본인은 나와 달리 월세에 살고(필자는 아버지 명의의 오피스텔에 살고, 대출 이자는 모두 아버지가 내주고 있어 실질적으로 관리비 14만 원 정도만 내고 있다.) 회사 식대도 제공되지 않는다. (필자는 전 회사에서 끼니당 1.2만원의 식대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본인이 사야 하는 것이 있을 경우 본인 돈으로 산다. (필자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비싼 전자기기 등에 대해서는 종종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용돈을 따로 받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족에게 비정기적 용돈을 받는다.)


실질적인 차이는 이 정도이고, 성향으로 따졌을 때 나는 절약형, 남자 친구는 소비에 후한(?) 편이다.


나는 블로그를 따로 운영하고 있어 미용비 지출이 0원이다. 가끔 맛집 등의 협찬을 받기도 한다. 블로그를 통해 1년에 그래도 120만 원 정도는 수비하고 있는 것 같다. (파마, 뿌리염색, 왁싱, 속눈썹, 맛집 등) 블로그 자체 수입도 있고 차곡차곡 넣어둔 etf도 요새 빛을 발하고 있으며, 유망 공모주로 가끔 치킨 값 벌이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로서는 돈을 잘 모을 수 있는 조건인 것도 나, 그 돈을 잘 아끼고 활용하는 것도 나인 것 같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나와 남자친구는 이것뿐만이 아니라 여러모로 성향이 많이 다른 편인 것 같긴 하다.


남자친구는 재테크 쪽으로는 영 관심이 없고, 글자 읽는 것도 싫어하고, 공부도 싫어한다. (함께 카공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기본적으로 욕심과 야망이 없는 편이지만, 대신 옷과 패션에 관심이 많고,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며, 회사에서의 명망이 두터운 흔히 말하는 회사 내 인싸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지적허영심이 있는 편이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으며, 그 야망에 비해 회사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게다가 조금 음침하고, 혼자 이것저것 자기 계발하는 것을 좋아한다.



쓰다 보니 글 자체가 누가 아깝네 아깝지 않네 따지는 것을 유도하는 것 같아졌지만, 요약하자면 나와 남친의 상황은 이러하다.


고졸(지방대 중퇴), 돈 많이 안 모은, 자기 일을 좋아하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환경에서 자란 남자친구


서울 10위권 4년제 졸업, 그래도 평균치 정도는 모은, 일이 싫어 방황하고 있는, 불화가 난무하는 중상층 가정환경에서 자란 나.



처음 남자친구가 좋았던 이유 중에는 훤칠한 키와 내 취향의 얼굴도 있었지만, 일찍이 대학교를 중퇴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일을 시작한 것이 멋있어 보인 것도 있었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미래의 가정과 비슷해서 이 친구랑 함께라면 행복하고 다툼 없는 미래를 꿈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다들 말한다.


현실은 다르다. 돈이 없으면 사랑은 도망간다고, 기본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너가 너무 아깝다고, 여자는 하향혼 하는 게 아니라고, 귀가 얇은 나는 이런 말이 들릴 때마다 다시 현실과 이상을 저울질 한다.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해도 될까?


후회하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다 헤어지면 너무 늦는 걸까?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나? 부모님 도움 없이 둘이 잘 살 수 있을까? 부모님의 뜻에 반대한만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남들이랑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파트는 살 수 있을까?


결혼 할 때는 마음 속에 한 치의 걸림돌도 없어야 한다고 하던데, 걸리는 게 너무 많지만 헤어지지도 못하겠는 내가,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될까?


결국에는 난,

이런 비겁한 저울질 끝에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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