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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Oct 16. 2024

온실 속 화초와 우물 안 개구리

저를 소개합니다.

01.


온실 속 화초와 우물 안 개구리가 내 얘기였을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회가 하라는 대로,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르며 살았다. 어른들은 말했다. 지금 자기 말을 들으면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당시 난 어른들이 말씀하는 대로 인생에서 "실패자"로 남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운 좋게 서울 10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교에 가서도 고등학교 때의 모범생 이미지를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1학년 1학기 차석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결과적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긴 하지만 나는 그 공부에서 일말의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자기 선택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과목 선택도, 출석과 공부 모두. 고등학교 때 당연히 해야만 했던 것들이 선택지로 바뀌는 지점이었다. 나는 학우들의 자유로운 선택들 사이에서 여전히 실패자로 남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즐겁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 왔으니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게 졸업과 가까워지던 때, 나는 결국 번아웃이 왔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맘껏 실패하며 경험할 수 있는 시절을 그렇게 허비했다.


그리고 대학교 때의 성적은 사회적 성공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그즈음 뼈저리게 깨달았다. 출석을 매번 빼먹으면서 학사경고를 밥먹듯이 받던 친구는 전문직 시험에 합격했고,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하던 친구는 몇 년 후 유명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학창 시절에 취미로 유튜브를 시작했던 친구는 몇 십만 유튜버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 건 4점대의 성적표와 졸업증뿐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 외의 사회적 활동을 하고자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셨다.


"과외할 거 아니면, 돈은 아빠가 줄 테니까 공부에만 집중해."


그게 맞는 말인 줄 알았다.


난 언제나 공부를 잘했으니 여전히 공부가 내 유일한 적성이라고 생각했고 고민하지 않았다. 사주에도 공무원과 공기업, 전문직이 천직이라고 나와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공부는 어느 정도 했지만, 사회적인 스킬은 바닥을 쳤다.


그렇게 졸업 후 점점 벌어지는 격차를 느끼면서 나는 체감했다.

내가 바로 온실 속 화초였구나,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깨달았을 때는 25-6살 무렵이었다.


졸업 후 취직이 된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남부럽지 않은 곳에 들어가고 싶었고, 그곳에서 주는 연봉은 내 눈에 꽉 차야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니 당연히 내게 좋은 결과는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25-6살에 깨달은 그 시점도 이미 늦은 때가 아니었다.


다만,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조바심이 났다. 나를 돌아볼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다시 고민해 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어디든'에 붙는 조건이 많았고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된 채 사회에서 소속감 없이 허공을 떠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의 고민들이 꽃피는 시기가 되었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공부를 잘했지만, 정작 나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과거들이 몹시 아쉽다.

인생은 20살 30살까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50년, 60년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때쯤 되면 내게 조언을 해주었던 어른들은 대부분 이미 이 세상에 없을텐데 말이다.


사실 공부를 잘한 것도 성실함에 비롯된 결과일 뿐, 내가 공부를 잘하는 머리를 타고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머리가 좋은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 포지션이 위태롭다는 생각에 더욱 괴로웠고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공부가 다가 아닌 것을 알았다면 내 장점에 좀 더 집중해서 장점을 키울 수 있었을 테지만 그때는 시야가 좁디좁아서 그런 유연한 생각이 파고들 틈조차 없었다.


결국, 온실 속 화초와 우물 안 개구리. 그게 나였고, 그걸 인정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그 과정에 있다. 일과 결혼, 사랑, 가족 그 모든 것이 고민이 되는 나이 30세.

그 고민 사이에 자꾸만 끼어드는 열등감과 질투, 부러움 등은 나를 더욱 고민하게 만든다.


그런 고민들을 이번 기회에 한 가지씩 풀어내 보려 한다.


지루한 감정소모가 되겠지만, 언젠가의 내가 돌아봤을 때 기특하다고 여길 수 있길.

그리고 앞으로 이 길을 지나갈 자들에게는 희망과 공감, 그리고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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