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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Dec 16. 2022

스타트업 채용형 인턴 탈락

28살 만년 백수생의 넋두리

   

2차 면접 후 최종 통보가 늦어질 것이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부터 직감했다. 아, 나 말고 더 나은 면접자를 구했구나. 결국 나는 또, 떨어지는구나.


티엠아이를 남발한 탓일까, 전공지식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서일까, 그날따라 얼굴이 부어있어서 게을러 보였나, 그냥 내가 똘추같이 대답을 했나. 기껏 의욕적으로 시작한 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인사팀에 갈 수 있을까. HRD 담당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그런데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왜 안될까. 나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28살, 첫 취직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인데 나는 왜 여전히 제자리일까. 애초에 기껏 정해둔 인사라는 직무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하고 싶은 일인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주변 지인들의 합격 소식, 이직 소식, 연수 소식, 회사의 복지들 따위를 은연중 알게 되면 부러웠다. 부럽지만 한편으로는 결실을 이룬 저들의 기쁨에 진심으로 동참해 주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잘되는 것이 나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과 나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아 멀리하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상황이, 그리고 또 마음이, 일렁인다. 울렁거린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불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이 울렁거리는 마음을 안고 카페에 왔다.


어제 눈이 많이 와서 길가에 눈이 아직 녹지 않았음에도 굳이 자전거를 탔다.


카페를 향하는 길에 미끄러지고 싶었다. 미끄러지면 아프니까, 아픈 건 그럴듯한 이유가 되니까, 그걸 핑계 삼아 펑펑 울고 싶었다. 멀쩡히 길을 걷던 사람들이 다가와 날 걱정해주길 바랬다. 당장의 부끄러움보다 위로가 받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만 난 넘어지지 않고 멀쩡히 카페에 도착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전 글에 꿈을 찾아 떠난다고 지껄였으면서 다시 취직 준비를 하러 돌아온 내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평소 변덕이 많은 나는 여기서도 이러는구나, 하고 조소가 올라오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풀어쓰려고 한다.


글을 쓰려할 때마다 내 마음을, 추악한 감정들을 날 것으로 마주하게 되어 두려웠다. 머릿속은 터질 듯이 이 생각, 저 걱정으로 가득한데 막상 글을 쓰려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의식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그 감정을 끄집어내는 것을 막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합격 소식으로 인해 다시금 그것을 꺼내놓을 용기가 생겼다.


사실 틈틈이 발행 글을 저장해두었지만, 솔직한 내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는 것,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아팠던 과거를 다시 되짚는 일 따위의 것들이 꽤나 버거웠다.



하지만 미루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지. 어느 날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


Do Badly as fast as you can.

가능한 한 빨리 실패하라. 망치는 것은 어차피 피할 수 없으니 이 점을 인정하라.


또, 이런 말도 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중요한 것은 정말 엉망진창인 초안을 써보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앤 라모트,「글쓰기 수업」)


이 문구들을 보며 내 삶이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구나, 큰일이 아니구나, 그저 과정일 뿐이구나라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도 같다.



엉망진창인 나의 삶을, 또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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