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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May 24. 2024

<슈퍼 노멀>을 읽고

끌어당김 다음엔 헌신

 '헌신'


 답은 헌신이었다. 작년에 푹 빠져 있었던 하와이 대저택 유튜브. 또 여러 자기 계발서에 공통적으로 나와 있는 잠재의식의 힘, 목표를 적으면 이루어진다, 비전 보드,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의 힘 등, 원하는 것을 이루는 여러 가지 방법을 따라 해 보아도 실현되지 않았던 이유는 헌신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노력 없이 대가 없이 달콤한 것만 취하려 했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정말 그랬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집도 가지고, 세계 여행도 가고 싶었다. 


 여전히 이런 소망을 가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부끄럽지만, 더 이상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나의 욕망이 여전히 부끄럽다는 것은 내 잠재의식에서 이런 욕망은 탐욕이며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력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청빈이 고고하고 도덕적 삶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너진 것이 고작 4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떨쳐버리려고 해도 잘 안 된다. 또 이런 생각 때문에 부를 축적하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애쓰는 삶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비난해 왔었나. 겉으로 표현은 안 했겠지만, 부끄럽게도 속으로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보내준 '내성적인 건물주' 유튜브 영상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었다. 정말 놀랐다. 내 앞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어쩌면 내 잠재의식에서는 내가 평생 노력해도 부자 따위 될 수 없으니 차라리 고상하게 가난하게 사는 것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나 같은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전세살이 하며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하며 이야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없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면 되지 무슨,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택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더 몰랐다. 시댁에서 다자녀 특별분양을 받아줄 수 있겠냐고 하셔서 남편이 신청을 했고, 당첨이 되었을 때 고대로 시댁에 명의를 넘겨드렸는데, 그때에 사람들은 의아해했었다. 그 아까운 걸 왜?라는 표정이었다. 그때 난 분양권이 뭔지도 몰랐었다. 


 지금의 나는 작년에 남편이 분양권 하나를 등기 쳤고, 나에게도 분양권이 하나 있다. 그걸 해결하려니 매일매일 스트레스라 마이너스 피를 붙여서 내놓은 상태다. 


 몇 년 사이에 나는 참 많이 변했고, 돈에 관심도 없고 나보다 더 결벽증 있었던 남편은 주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세상물정 모르던 두 사람이 이렇게 난리부르스를 떨고 있다니. 그전을 생각하면 놀랄 노자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소원을 아무리 적고, 사진으로 붙이고, 상상하고 믿음을 가져도 헌신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물론 기적 같은 일은 간혹 일어난다. 나에게 안 일어나서 그렇지.) 잠재의식을 바꾸는 건 큰 변화임에 틀림없고 소원을 이루는 기초가 되는 것도 맞지만, 그와 동시에 헌신이 있어야 실제로 현실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할 수 있다는 믿음,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는 것이 잠재의식의 변화일 것이고, 그것이 첫 단계라면, 그다음은 실제 현실에서 소원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면, 그 소원을 크게 써서 벽에 붙여놓고, 글쓰기를 매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충 하면 안 되고 헌신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 인생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헌신하면 모두가 성공하느냐고? 그건 또 모를 일이다. 


 갑자기 허무해진다고? 안타깝지만 그게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도 한 번뿐인 인생, 가슴 두근거리는 일에 도전해 보는 건 좋지 않은가? 두 번 사는 인생이 아니니까. 가난하게 살아 봤으니까 부유하게도 살아 보고 싶고, 이 나라 저 나라 마음 편하게 다녀보고도 싶고, 이코노미석 말고 비즈니스석에도 타 보고 싶지 않나. 그렇게 꿈을 꾸며 살아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나는.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는 내가 남들처럼 얼마나 헌신을 할 수 있겠냐마는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가정 살림보다 늘 딴 데 마음이 가 있는 아내 때문에 우리 남편이 고생이 많다. 미안하고 고마워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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