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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un 07. 2024

<이중 세뇌>를 읽고

의존증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중독은 어느 정도일까.


 작가는 중독이라고 하지 않고, 의존증이라고 표현한다. 담배, 알코올, 성 등 의존의 대상은 여럿 있다. 그리고 요즘 추가하고 싶은 것은 휴대폰일 거다. 


 담배 의존증을 예로 들어보면, 담배를 처음 피우면 좋은지 잘 모르지만, 서서히 의존도가 높아가면 담배를 안 피울 때 담배 생각이 자꾸 난다. 그 이유는 담배를 피울 때 나오는 도파민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도파민을 원한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누구나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그냥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담배에 의존하게 되면 담배를 피우지 않을 때 도파민이 평균보다 현저히 저하된 상태가 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 그 정도가 더 낮은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도파민을 얻기 위해 담배 생각이 나고 담배를 피우면 도파민이 그 순간 충족이 된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도파민의 양은 담배를 피우는 날이 많아질수록 점점 줄어든다. 담배를 피울 때 나오는 도파민의 양을 나타내는 그래프의 기울기가 점점 아래로 향하는 것이다. 


 담배뿐 아니라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면, 그 전과는 아주 다른 상태가 된다. 도파민이 현저히 깎인 상태로 출발한다. 담배가 없던 일상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면(상쾌하지 않고 무거울 때도 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일상의 아침은 담배가 갈급한 상태로 출발한다. 이미 도파민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담배를 통해서만 도파민을 얻으려 하고, 맛있는 음식,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 멋진 풍경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은 줄어든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나 담배만 찾게 되는 상태, 담배 의존증이다. 


 담배를 예로 들었지만, 알코올도 그렇고, 휴대폰도 그렇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의존증도 마찬가지다. 요즘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도 집에서도 어디에서나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휴대폰 의존증이 심각한 상태가 아닌가 싶다. 휴대폰이 없던 일상에서 느꼈던 소소한 행복들은 줄어든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고 보면, 의존증이 생기면 그전보다 확실히 덜 행복한 상태가 된다. 의존 대상이 항상 갈급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늘 목마른 상태다. 


 또 놀라운 것은 하루에 담배를 딱 두 개비만 피우는 사람에 대해 작가가 말한 내용이었다. 


"얼마나 간절하면 딱 두 개비로 한정하고 지키려고 애쓰겠는가. "


 이 말에 나는 매일 내가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이 떠올랐다. 요즘 단 것을 줄이는 훈련 중인데, 이상하게도 믹스커피를 아침에 못 마신 날은 단 것이 더 당기고 참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아침에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뭔가 다 충족된 것인지 그날 하루는 단 것 생각이 별로 안 난다. 사실 오후에도 믹스커피 생각이 나지만, 참는다. 어쩌면 나도 믹스커피에 의존하게 된 것일까. 카페인도 중독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딘가에 의존하는 사람이 의지가 약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보통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술을 끊지 못하면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근에 빠졌을 때, 부동산에 빠졌을 때, 오로지 그 생각만 하고 쉽게 빠져나오지를 못했었다. 내가 뭔가에 빠져서 가족들에게 소홀하다는 인식도 느렸지만, 인식하고 나서도 그만두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의존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으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데, 의지가 약한 사람은 힘들어서 포기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지가 강한 사람은 끝까지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고 결국 해결하고야 만다. 그것이 의존 대상에 대한 태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왠지 묘하게 설득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은 또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불안하고 어느 정도 공허하다는 것. 이 말에 나는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나는 불안과 우울 때문에 약을 먹다 안 먹다 하고 있다. 그런데 불안과 공허함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물론 나의 경우는 그 정도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니까 약을 먹게 되었지만, 더 이상 불안하고 우울해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하고, 우울할 수 있고,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당연한 거라면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안을 느낄 때, 우울을 느낄 때, 공허함을 느낄 때, 뭔가 나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삐뽀삐뽀 경고음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굳이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불안해도 괜찮고, 우울해도 괜찮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래도 힘들면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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