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도파민
그 유명한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을 읽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진화론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궁금했다. 성경을 믿는다면 창조론이 무조건 맞는 거지 진화론은 말도 안 되는 거라고 배웠고, 그렇게 평생을 믿고 살아왔다. 맞다. 그건 믿음이다.
그런데 창조론만 믿음 위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진화론도 믿음 위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말만 듣고 그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지혜로운 행동을 하고 싶었고, 그동안 무수하게 들어왔던 창조론에 정반대 지점에 있는 진화론의 초기 이론을 듣고 싶었다.
우선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번역하신 분은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자 무척 애쓰셨을 것 같다. 원문에선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기도 한다니, 그 복잡함이 어느 정도겠나. 아무튼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을 표시하며 읽고 있다. 다 읽고 나면 나의 독해력은 어느 정도 향상을 이룰 듯하다.
예상했던 대로 다윈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맹점은 하나의 근거를 제시하고 이 밖에도 무수한 근거가 있으며 그 무수한 근거는 책에 싣지 못했다고 말하는 데 있다. 무수한 근거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 거다. 그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나는 너무 큰 성인이다. 설득력을 높이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그 무수한 근거라는 말 때문에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종과 속의 개념. 속 아래 종이 있다. 종이 속의 하위 개념이란 뜻이다. 같은 종 안에서는 변이가 일어나고 그 변이가 오히려 자연에 더 잘 적응해서 자연선택을 받아 일반적인 종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것 같은데, 종 안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어느 속에서 다른 속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건 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자신은 없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검정 말이 하얀 말로 진화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말이 코뿔소로 진화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말이다.
아직 3분의 1밖에 못 읽었고, 그마저도 이해를 다 못했기 때문에 뭐라 단정 짓긴 어렵지만, 빈틈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잘 몰라서 오류가 아닌데 오류로 착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위대한 과학자의 빈틈을 아무것도 아닌 내가 찾아냈다는 것에서 즐거움이 있다.
맞다. 나는 찰스 다윈과 지금 대결 중이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길 확률은 적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는 중이다. 시비 걸고 따지고. 아무도 이 장면을 못 보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을 던진다. 안타까운 건 대답이 즉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대답도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꽤 재밌다. 이해 안 되는 문장은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네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아휴. 그래서 건너뛰면 그다음 문장도 역시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네 번 읽었는데 이번엔 이해가 좀 된다! 그때의 희열이란!
이게 바로 고급 도파민이 아닐까. 고급 도파민에는 고통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