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
교육에는 슬로리딩이 필요하다. 특히 국어 교육에 중요하다.
요즘 슬로리딩에 빠져 있다. 일본의 하시모토 선생이 중학교 6년 동안 <은수저>라는 200여 페이지의 소설을 교재로 국어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이후 어른이 되어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있더라는 것이 알려져 유명해진 개념이다.
한 권의 책을 가지고 6년을 어떻게 수업하지?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을 읽으면서 파생독서를 발견했다. 사실 한 권만 읽은 것이 아니었던 거다. 시작은 <은수저>라는 소설에서 출발했으나 읽으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나온 내용들을 더 탐구하고, 체험하는 활동 속에 다양한 책들을 읽게 되었던 거다. 학생들은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100개의 일본 단가를 외우기도 하고, 두꺼운 사전에서 단어 뜻을 찾기도 했다. 소설에 나온 내용처럼 실제로 연을 날려 보기도 하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내용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들을 통해 생각하는 과정 속에 나온,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모두. <넛지>라는 책에 나온 것처럼, 선생님은 그저 학생들의 호기심을 살짝 건드린 것뿐이었다. 살짝 건드리니 학생들은 깊이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고 그 속에 푹 빠져 다양한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찾아서 관련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리고 그 과정이 마쳤을 때 학생들은 말하기 실력이나 글쓰기 실력, 문해력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모두가 수업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에는 슬로리딩 수업에 참여했던 단 하나의 초등학교, 성서초등학교가 나온다. 그 학교의 실험을 통해 이 책이 나왔고, 나에게까지 그 내용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성서초등학교가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실험을 못 했더라면 책이 못 나왔을 것 아닌가!
무려 2015년에 나온 책을 이제야 나는 발견했다. 아쉽긴 하지만, 그전에 봤더라도 그 당시 나에겐 별 감동이 없었을 수도 있다. 지금, 바로 이때에 만난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래서 여름방학 보충 수업을 슬로리딩으로 해 보려고 한다. 미친 짓이다. 그래도 해 보고 싶은 걸 어떡하겠나. 아이들에게 이렇게 수업하겠다고 하면 몇 명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
슬로리딩 열풍을 일으켜보고 싶다. 주말에 큰 딸과 같이 정종연 PD이 만든 추리 프로그램을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그걸 보면서 내가 말했다. 딸아, 우리도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어볼까? 그랬더니 큰딸이 한심하다는 듯이 날 보면서, 엄마는 이상한 생각 좀 그만하란다. 그게 왜 이상한 생각인가? 거기에 헌신할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 워낙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으니까 한 편 정도는 만들 수 있을 법한데. 아니다. 창작은 심각한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분야가 좀 어두운가. 안 그래도 땅굴 파고 들어가기 쉬운 체질인데, 안 된다.
나는 아직도 전능감이 남아 있나 보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할 것 같은 착각과 오해 속에 빠져 있나 보다. 제발 하나만 좀 똑바로 하자. 나 자신아.
큰딸의 조언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다시 슬로리딩으로 돌아와서, 수업을 구상해야 한다. 열풍을 일으키겠다느니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지 말고, 아이들이 다 떠나지 않도록, 재밌는 슬로리딩 수업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