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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ug 12. 2024

인생, 뭐 별 건가

웃어보자 하하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휴가라 해 봐야 2박 3일 함께 다녀온 것이 다지만, 나에겐 신기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족 여행이 힘들고 무거웠는데, 올해는 어찌 마음이 가볍다. 그래서 특별한 무언가를 하진 않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큰 공은 첫째 딸에게 있다. 여행을 가자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저녁에 게임을 하자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몽실언니를 함께 읽자고 해도 투덜거리면서 알겠다고 하는 첫째가 있어서 나머지 아이들이 잘 따라오기 때문이다. 둘째는 늘 삐딱선을 타긴 해도 언니 말은 잘 듣는다. 첫째는 리더십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잘 휘어잡는 것 같다. 칭찬도 잘하고 꾸지람도 잘하고. 요리조리 달래 가며 일을 결국 해낸다. 나에겐 없는 능력이라 볼 때마다 신기하다. 그때마다 아빠를 닮았겠지 하고 나는 생각한다.


 휴가를 마치고 어느덧 첫째와 둘째는 개학 날이 다가왔다. 셋째와 넷째는 아직도 한 달의 방학이 남아 있다. 안 그래도 남편은 방학을 보내는 아이들의 태도에 불만이 있어서 언제 한 번 남편이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풀어놓게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어제저녁이었다. 


 온 가족이 놀러 갔다가 늦게 들어온 둘째를 기다렸다. 둘째가 오고 모두가 모여서 아빠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남편은 평소에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잘 못한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화를 내게 되니,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중간에서 여러 번 들은 내가 적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함께 들었다. 


 남편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아침에 너무 늦게 일어나면 거실에 누워 있는 너희들 때문에 집안 청소를 할 수가 없고, 아침 먹는 시간이 다 다르니 아빠가 챙겨주기도 애매하고, 아침 신경 쓰느라 오전이 다 가는 경우도 있어서 그러다 보니 아빠의 생활 루틴이 다 깨져 버렸다. 그리고 고양이 화장실은 함께 순서를 정해져 청소하면 좋겠다. 또 게임 등 핸드폰 보는 시간을 좀 줄이면 좋겠다'  


 아이들의 방학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나라면 애들을 닦달해서 아침에 깨우겠지만, 남편은 그 말을 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아이들의 반응이 날카로워서 마음을 많이 다쳤기 때문일 거다. 막내 빼고는 다 사춘기라 감정이 들쑥날쑥하고 남편은 그 감정들이 보이면 상처를 받는다. 물론 나도 상처를 받을 때는 있지만, 나는 같이 싸우고 또 울면서 화해하고, 또 뒤에 화해하기도 하고 어쨌거나 과정이 정리가 되는데, 남편은 나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남편은 좋지 않은 조건과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잘하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에게는 남편만 한 아버지가 없었다. 대신에 책임감이 강하고 무뚝뚝하며 때때로 버럭 화를 폭발시키는 무서운 아버지가 계셨다. 지금까지 남편이 그렇게 화가 많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아주 놀라운 일이고, 무척 큰 노력이 필요했던 일이다.  


 부모에게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이 자랐던 나와 수시로 욕을 듣고 맞기도 하며 자랐던 남편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남편에게 더 가혹하다. 나는 아이들보다도 철저히 내가 먼저인데, 남편은 아니다. 남편에겐 아이들이 먼저다. 아이들은 그런 남편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자기들은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라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사랑보다 남편의 사랑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훨씬 더 힘겹다는 것을. 때로는 부담스러운 집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사랑인 걸 어쩌나. 그것도 사랑의 한 방식인 걸. 아빠의 사랑이 어그러져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사랑이고, 나처럼 쿨하게 표현하는 것도 사랑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경험한 바탕에서 사랑을 느끼고 또 사랑을 나누어준다. 겪은 사랑의 경험이 다 다르니 느끼는 사랑도 다르고 나누어주는 사랑의 모양도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해 버리는 건 너무 매정하다. 


 흔히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을 한다. 잘된 사랑의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사랑은 사랑 아닐까. 


 남편은 이야기를 좋게 마무리지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결국 둘째는 눈물을 보이며 서운함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끝까지 애를 쓰는 남편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서운해하는 둘째를 보며 속으로 서운해하든지 말든지 흥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끝까지 둘째를 붙잡고 싶어 했다. 내가 지금은 그만 보내주는 게 좋겠다고 해서 둘째는 제 방으로 갔는데, 남편은 찝찝하단다. 자기가 잘못 이야기를 한 것 같단다. 그래서 안 하면? 또 계속 참으면 결국 화로 폭발하고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게 뻔하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나는 좀 힘이 든다. 나에겐 별 일 아닌 것이 남편에겐 너무나 큰 일이고 힘겨운 일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 남편은 자신의 과정을 잘 밟아가고 있는 중이고, 지금은 그래서 그게 맞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사실 남편에게 좀 의지를 해 보고 싶다. 좀 기대보고 싶다. 큰 틀에서는 남편을 많이 의지하고 산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일들에는 남편이 날 많이 의지하니까  때로 버거울 때가 있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의지하며 사는 게 맞는데, 요즘 내가 힘든가 보다. 언제나 내가 남편에게 괜찮냐고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나도 남편이 나에게 가끔은 그렇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아이들만 신경 쓰지 말고 나에게도 관심을 좀 가져주면 좋겠다. 나는 괜찮은지, 힘들지 않은지 말이다.


 나는 12살 소녀이고 남편은 8살 꼬마 같다. 몇 살 차이 안 나면서 유세를 떠는 것 같지만, 12살이 8살을 이해해야지 8살이 12살을 어찌 이해하겠나. 남들도 다 그러고 살더라.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힘들어하면서. 그리고 어찌 됐든 간에 나는 지금 시원한 직장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고 있다.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힘이 들어도 오늘 직장에서 어쨌니 저쨌니 하고 떠들면 들어줄 사람은 남편뿐이다. 내가 원하는 리액션은 해 주지 않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아마 평생 시원한 반응은 듣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참 웃긴 것은 이러고 사는 내 모습에 내가  실실 웃고 있다는 거다. 미친 건가 싶기도 한데, 정말로 웃음이 난다. 울다가 웃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웃긴 걸 어쩌나. 


 내 속마음을 잔뜩 털어놓아서 그런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또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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