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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Nov 22. 2023

사람도 동물도

애정이 필요하다

 나에게 다른 사람을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장생활에서 대부분의 사람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간혹 거슬리는 때가 있다. 순간 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편하게 다른 사람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어떤 사람은 적절히 끊어내기도 한다. 나도 듣다가 끊어내는 편이긴 한데, 편한 사람 앞에서는 나도 뒷담화를 할 때가 있다. 그렇다. 내가 뒷담화하는 것은 축소시키고, 남이 뒷담화하는 모습을 보면 못마땅한 것이다. 


 생각은 든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마음에 안 들고. 상황이나 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판단이 든다. 이미 나의 기준이 있어서 모든 것들이 그 기준 아래 정렬된다. 자동이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저건 음... 간당간당한 것도 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뒷담화를 하는 편이 나을까. 속에 담아두고 참으면 병이 생긴다고 하니까. 아니다, 속으로만 실컷 욕을 할까. 그럼 속에 쌓이는 것이 없을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


 우리 집 고양이는 나의 무관심 때문에 얼만큼 힘이 들까? 퇴근한 뒤부터 나만 보이면 졸졸 쫓아다니다가, 내가 안 봐주면 발등을 콱 깨문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밥도 있고, 물도 채워져 있는데 왜 그래? 하고 나는 내 일을 한다. 그럼 고양이는 서운할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겐 고양이가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정말 우리 집이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들 쉴 때는 휴대폰 보기 바쁘고, 세 고양이들과 누가 놀아주는지 모르겠다. 작은 딸 방에 고양이들이 누워 있고, 아들은 한번씩 고양이를 품에 안고 돌아다니는 것, 내가 보는 장면은 그것뿐인데,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서 과연 행복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추운 길거리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나의 무관심과 영혼 없는 반응을 생각하면, 내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참 외로울 것 같다. 남편은 여러 번 외롭다고 했는데, 지금은 주식 공부에 빠져서 그 말이 줄었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이 변화하고 성숙해져왔지만, 그렇다고 나의 기질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말이다. 바꾸고 싶은 때도 있긴 하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다고 외치며 나에게 고통을 줄 때. 그 외에는 바뀌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당연한 거지만, 그대로가 편하고 익숙하니까. 


 고통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결혼 생활 약 15년의 고통으로 나는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건 분명하다. 일종의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고통스러워서 도망치고 싶은 때가 여러 번이었지만, 결국 남아 있기로 선택했고, 그로 인한 또다른 고통과 또 행복도 내 몫이다.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다. 내가 그 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 그런데 나 때문에 힘든 남편이나 아이들을 보면, 이런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좀 더 따뜻한 사람이 아내이고 엄마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안하다. 


 눈물이 난다. 너무 미안해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그릇은 아직 이 정도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이 담아서 더 많이 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다. 성취, 업적, 명예, 이런 것들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에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권속들이 때로 성가실 때가 있다. 그래서 살림도 대충 하고, 다른 모든 일을 대충 한다. 그러면 그게 그들을 서운하게 느끼게 한다. 당연한 거다. 


 오랜 시간 동안 그게 잘못인지 모르고 지냈다. 최근에서야 남편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통이 있어야 비로소 돌아보는 것이다. 만약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몰랐을 것이고, 여전히 그대로 살 것이다. 그래서 고통이 나에게는 복이다. 


 고통을 지나 왔다. 그러니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다. 현재 극심한 고통을 겪는 중이라면, 그런 말이 안 나온다. 그저 고통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아픈 건 정말 싫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다 보니, 고통 중에도 견디는 힘이 커진 것 같다. 고통을 즐긴다는 말이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 고통아 와라. 그 정도는 아직, 멀었다.  


 현재 고통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언젠가 끝이 있다고 말하면 될까. 그 말이 들릴까. 고통 중에는 출구가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면 도움이 될까. 속은 썩어들어가는데,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으면 효과가 과연 있을까. 책에서는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안 웃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웃으면서 살자. 행복하게 살자. 힘이 들어도 또 웃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해 주자. 그러자고 오늘도 목소리에는 유익하지 않은 믹스커피를 또 한 잔 마셨다. 핑계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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