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을 읽는 중

우주의 본성은 무엇인가

by 글향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있다. 어제는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을 e-북으로 읽으면서 밑줄치고 메모하고 싶은 걸 꾹 참느라 힘들었는데, <명상록>은 읽다가 표시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


처음엔 재미가 별로 없었다. 저자가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한동안 나오기 때문에, 읽으면서 이 사람 참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볼 줄 아는구나 싶어 저자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좀 지루했다. 이제 조금 재미있어졌다.


"너는 왜 너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냐? 아무 쓸데 없는 일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멈추라."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런데 또 나온다.


"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살피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자신의 정신의 움직임들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지게 된다."


와! 이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나는 이대로도 괜찮은 거다. 왜냐하면 나는 눈치가 좀 없는 편이고, 직장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소문을 가장 늦게 아는 사람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그래서는 일이 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의 머릿속,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도 큰 일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머릿속과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면 그건 큰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 자신의 머릿속이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 마음에서 정신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지 앞으로 더 주의깊게 살펴봐야겠다. 내가 왜 이런 말과 그런 행동을 하는지, 좋지 않은 결과와 반응을 얻는데도 왜 계속 그런 습관을 반복하는 건지 이제 좀 알아야겠다. 그러려면 잠시 멈춤!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멈추고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스쳐지나가 버린다. 그것도 아주 빨리. 멈춰야 한다. 저기요, 잠시만요, 하고 나를 멈추고 나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우주의 본성은 무엇이고, 내 자신의 본성은 무엇이며, 나의 본성은 우주의 본성과 어떤 관계에 있고 어떤 우주의 어떤 부분인지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 네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에서 늘 네가 속한 저 우주의 본성을 따른다면, 그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와! 뭘까 이 마법 같은 기분은? 겉으로는 내가 평온해 보이겠지만, 내 속마음은 폴짝폴짝 뛰고 있다. 이 저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다. 121년에 태어났고, 180년에 사망한 사람이다. 갑자기 내가 굉장히 유치해지고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많은 책을 읽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많은 지식으로 훌륭하게 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많은 책을 읽고, 세상을 관조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지혜를 얻기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주의 본성을 사색하는 일이란, 너무 위대하고 웅장하지 않은가. 큰 제국의 황제라면 무척 바빴을 텐데, 아닌가? 아닐 수도 있다. 암튼 갑자기 튀어나온 우주의 본성에서, 그리고 나의 본성이 우주의 본성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이 부분에서 나는 감명을 받았다.


왜냐하면, 작년 이맘때부터 읽어왔던 글의 흐름이 우주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주와 철학이다. 다른 말로는 운명과 철학이랄까. 성경으로부터 출발해서 주식과 부동산을 공부하다가, 운명론에 빠졌다가, 그리고 성공학에 심취해 있었다. 양자 물리학에도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깊이는 안 들어갔다. 너무 어렵다. 이게 바람직한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철학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우주라는 개념은 나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고, 곧 하나님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성은? 하고 대입해 보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의로우신 분이며, 자비의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고, 죄를 싫어하시되 무척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면 나의 본성은? 온전히 선하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선함이 분명히 있다. 불완전한 선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나의 본성과 하나님의 완전히 선하신 본성에는 연결고리가 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어떤 우주의 어떤 부분인지를 알라고 하는 대목에서 막혔다.


다시 생각해 보자. 우주에는, 즉 하나님에게는 어떤 부분이 있다. 선하신 부분, 인자하신 부분, 의로우신 부분? 그러면 나 자신을 시간 단위로 잘게 쪼개서 지금 현재의 나는 어떤 부분의 하나님과 가까울까? 현재의 나는 선함에 가까운가? 의로움에 가까운가? 아니면 멀어져 있나?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본성에 가깝게 살면, 나의 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바르게 살자"가 인생 최고의 진리인 것일까? 그런데 저자는 우주의 본성에 가깝게 바르게 살려면 철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철학이 있어야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고, 고통을 이기게 해 주며, 거짓과 위선으로 행하지 않게 해 준다고 한다.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준다는 것.


결국은 철학 책을 읽어야 하나보다. 읽다가 딴 길로 새고, 또 읽다가 딴 길로 샜는데, 언제나 돌아오는 곳은 철학이다. 우선은 <명상록>부터 다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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