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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Mar 08. 2024

힘들고 슬플 때는 슬퍼하자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은 말이 쉽지 실행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대개 캔디의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하니인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고 노래하는 캔디인지 하니인지의 노랫소리가 잠재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외로워도 꾹 참고, 슬퍼도 꾹 참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일단 무엇이든 참고 본다. 그치만 항상 참았던 건 아니다. 안 참던 시절도 있었다. 


 학교 다녀 오면 엄마에게 하루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식사시간이 그래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누구 때문에 힘들고, 짜증이 나고 무슨 일때문에 즐겁다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다 했었다. 대부분은 나 잘했지? 하는 자랑 섞인 이야기들이 많았고, 엄마에게 매번 칭찬을 듣고 싶어했던 것 같다. 징징거리는 것도 많아서 엄마가 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유 이 철딱서니 없는 것, 그랬을까. 때로는 하늘높이 올라가고,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징징대는 내가 힘들었을 거다. 요새도 가끔 엄마는 말씀하신다. 나는 니 속을 도통 모르겠더라고. 내가 그렇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엄마는 당신과 너무 다른 내가 이해가 잘 안 되셨던 것 같다. 


 어제 딸아이가 힘들다고 해서 어떤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딸아이 방에 갔었다. 많이 힘들단다. 미칠 것 같이 힘들고, 죽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걱정을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다 그렇단다. 누구는 전봇대를 잡고 울었다고 하고, 자기는 다리가 시려워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누구는 엄마랑 싸우고 가출했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들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풀지 못하고 어딘가로 뻥 터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너는 뭣때문에 제일 힘드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싫어서 힘들다고 했다. 자기 외모도 싫고,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싫고 우리 가정도 싫고 뭐가 다 싫어서 힘들다고 했다. 하-. 숨이 턱 막혔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내 눈엔 이쁘고 잘 하는 게 너무 많아서 아까운 딸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사춘기는 다 그런가.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딸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얼마나 괴로울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그래서 내가 잔소리를 덜 해보겠다고 말했다. 어줍잖은 얘기인 건 알지만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작년에 내가 엄마를 크게 미워했던 일이다. 평생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를 닮고 싶어하고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늘 부족했고 그래서 힘들었다.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질 못했다. 아니 싫어했다. 무척. 그런데 상담을 받으며 엄마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되었고, 점점 객관화되어 엄마와 분리가 일어났다. 가장 큰 계기는 상담 중에 내가 큰 딸을 좋아하지 못하는 것이 나와 엄마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바라며 매달려 있는 상태로는 내 큰 딸을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좋아할 수도 어쩌면 사랑할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갑작스레 미운 감정이 폭발했다. 이 모든 힘든 상황의 원인이 엄마인 것마냥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만나고 싶지도 않고 전화통화도 하기 싫었다. 엄마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사춘기 때 했어야 할 일을 나는 마흔넷에 했다. 


 엄마는 기다려주셨다. 그게 엄마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멀게 느껴졌지만 속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엄마는 나를 무척 사랑한다. 표현이 좀 안 될 뿐이다. 그리고 나도 표현이 늘 좋지 않았지만 큰 딸을 무척 사랑한다. 언제나 소중하고 아까운 딸이다. 그리고 이제 엄마와 분리되고 나니 큰 딸이 너무 좋아졌다. 이제서야 큰 딸이 얼마나 귀여운지 보이고 사랑스러운지 알겠다. 예전엔 큰딸이 안아달라고 다가오면 어색해서 피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다가오면 좋다. 그러니 그런 엄마 옆에서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큰 딸이 자기 자신을 이토록 미워하는 건 이런 엄마 때문일 수도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딸아이한테 내가 그랬다. 나를 미워해 보라고. 그러면 너도 괜찮아질지 모른다고. 아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식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자기는 해결방법이 있단다.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이번에 다른 고등학교를 가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 친구 옆에 있으면 힐링이 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친구가 있을 수 있지? 나는 너무 놀라웠다. 딸 얘기론 그 친구는 특별한 아이란다. 평생 힘든 일 같은 거 겪어본 일이 없는 친구란다. 그래서 같이 있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된다고. 그런데 떨어져 있으니 너무 힘들단다. 그런 친구가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잔소리를 덜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힘든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답답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내일부터 또 힘들텐데 어떻게 해? 그 친구도 자주 못 보고."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그래, 다른 방법이 없다. 나도 그냥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나마 딸이 누군가에게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해서-비록 그게 엄마라서 좀 그렇지만-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내 스스로 위안을 했다.  


 새학기를 맞아 아이들도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일을 쉬고 있는 이 상황이 답답해서 힘들 거다. 나도 힘든데 아직 말을 못하겠다. 그래서 요즘은 기도가 더 나온다. 하나님, 저 힘들어요.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생각에 눈물도 나고 감사도 나온다. 그래도 이나마 이렇게 살고 있는 이 현실이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감당할 만하니까 허락하신 거겠지. 나는 예수님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그렇게 또 위안을 하고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일하러 가야한다. 


 슬픔을 쌓아두지 말고 흘려보내자. 슬퍼할 자리를 만들고 눈물을 흘려서 슬픔을 저 멀리로 떠나보내자.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지 않도록. 이상하게 터질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해치게 되는 폭발이 되지 않도록 슬픔을 잘 보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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