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는 축복이다
딸아이가 나를 두고 엄마는 정말 느리다고 말한 것 때문에 크게 놀랐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늘 문득 그게 떠올라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분명히 느리다는 것을 왜 그제서야 깨달았을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딸이 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시점이 깨달음이 찾아오는 적기였던 걸까?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의 느낌은 어땠었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느낌은 시원함이었다. 시원하다, 상쾌하다 이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난 왜 항상 검색이 느릴까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모자란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나는 좀 느린 편의 사람일 뿐이지, 어딘가 모자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유와 해방을 느낀 것 같다.
'바보똥자루'라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오던 때가 있었다. 대체 그 단어가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깊이 박혀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잘못될 때마다, 느낌이 좋지 않을 때마다, '바보똥자루'라는 말이 무심코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나오고 나면 창피하고 스스로도 부끄럽다. 그런데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단어가 내 속에 가득차서 목구멍에 가득차 있어서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단어는 이제 추억의 단어가 되었다. 나는 더이상 그 단어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를 얻었다. 매일 아침 나는 출근할 때마다 차 안에서 이렇게 외친다. 물론 작은 목소리로, 또는 속으로. "나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성이다, 나는 유능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나는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이다, 나는 무엇이든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교사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또 나의 소원들을 공책에 적어 둔다. 생각날 때마다. 내 가방에도 수첩하나가 들어 있고, 내 잠자리 옆에도 하나 놓여 있고, 거실 책상 위에도 공책 하나가 놓여 있다. 다행인지, 나는 누가 내 수첩을 볼까 크게 두렵지 않다. 보면 물론 창피하긴 할 테지만, 창피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잠들기 전, 가장 큰 소원을 떠올리고, 자고 일어났을 때도 소원을 떠올린다. 소리내어서 말하진 못했다. 여동생의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고, 남편의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라고, 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새로워지는 중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나의 꿈이, 불행한 가정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소원으로 옮겨가고, 오랜 육아 기간을 거치면서 나와 같이 힘들어할 많은 엄마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소원까지, 나는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다.
외롭고 괴로운 청소년들에게는 '너는 참 소중한 아이야.'라고 그 마음에 닿게 전해주고 싶고, 외롭고 고된 싸움을 날마다 하고 있는 이땅의 엄마들에게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엄마이기 이전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고 싶다.
세상은 복잡하고 괴롭고, 인생은 고달프고, 고비고비마다 마음이 물결치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곳이고, 내 인생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알게 해 주고 싶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가슴이 이렇게도 벅찰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당신이 모르는 세상이 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