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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pr 15. 2024

우울함의 원인

원인부터 찾자

 일터에서는 집에 가고 싶고, 집에서는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싶다. 


 그냥 나는 내 삶에서 도망을 가고 싶은 것일까. 아닌데. 나는 내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있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하고 아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게 버겁다. 


 객관적으로 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은 게 맞다. 하지만 난 한참 동안 그게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모자란 나 자신을 탓해 왔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그게 별 게 되는 순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 왔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인 듯하다. 네 아이를 낳은 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선택이었다는 것을. 


 일을 저지르고 수습을 못하는 게 내 특기다. 남편은 다혈질적인 성격이지만 내 뒷수습을 해 오느라 한참을 고생하며 살았다. 물론 나도 남편이 저지른 일 수습한 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남편이 한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무튼 내 선택이 또 실수였고, 나는 내 한계치를 모르고 일을 벌였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는지, 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그냥 남들 다 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내가 어딘가 모자란 거라고 탓했다. 차라리 내가 못난 것이 더 나았다. 원래부터도 못난 걸 알았으니까. 


 전능감과 자기 비하의 양 끝을 오고 갔다. 중간은 없었다. 나의 어중간한 실체를 외면하고 살았다. 그래서 내 마음도 내 생각도 내 감정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여러 가지 증상들이 해결이 안 되었던 거다. 


 직면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확인하는 것은 너무 아프다. 여전히 환상 속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고, 담담히 나를 바라보면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게 아프다. 나는 평범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잘나고 싶었다. 누구보다 잘나서 저 하늘 높이 훨훨 날아 모두가 나를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모자란다는 걸 들키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비난하고 쓰레기 취급을 해서 갖다 버려야 속이 시원했다. 잘나지 못할 바에는 그냥 없어지는 게 나았다. 외면당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항상 거절과 거부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던 것일까. 사람들이 나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 나를 분명 싫어하며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모든 것이 무서웠다. 무섭다는 말 뒤에 숨고 싶었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내가 어떻게 괜찮은 사람일 수 있을까. 얼마나 어리석으면 매번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걸까. 맞다. 나는 어리석었다. 아무 대책 없이 일을 벌였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한지 힘든지 증상을 해결하려면 인정부터 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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