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뱅이에 노름꾼이었던 설이 아버지가 변화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설이가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설이가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술과 노름을 뚝 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기도 하고, 행상에서 돌아오는 설이 엄마의 마중을 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토록 무관심하게, 냉정하게 대하던 설이에게 애정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서울 언니들의 봉사 활동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통곡하는 고씨 아주머니의 울음 속에서 무언가 깨달은 점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김끝예 언니가 와룡리를 떠나면서 전한 예수님 이야기가 한몫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서울 언니들이 보내온 성경책을 집집마다 한 권씩 받아 와서 읽기 시작한 뒤부터인지도 모릅니다.
“설아, 학교 가자. 아부지가 강 건네 주께 잉? 빨랑빨랑 서두르랑게?”
“네, 아부지.”
한 겨울에는 살얼음이 진 강을 맨발로 건너서 학교에 가야 했는데, 어느 날은 설이 아버지가 까만색 긴 장화를 신고 설이를 업어서 강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아부지, 미자랑 순님이도 쫌 건네 주랑 게라오.”
“알았다, 알았어. 내 여기 있는 놈덜 다 건네주께 얼릉 학교들 가그라 잉?”
이렇게 시작된 설이 아버지의 헌신은 여름 장마 때가 되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홍수가 져서 강둑을 넘을 정도로 물이 높이 차올라왔지만, 보통 때는 비가 많이 와도 사람 허리에 찰 정도로만 강물이 불어나곤 했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니께 아부지가 목말 태워서 강을 건네주어야 쓰것다.”
그리고는 설이를 앞장 세워서 걸어갑니다. 벌써부터 나와서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야들아, 너네들도 가자. 아저씨가 건네주께 잉?”
설이 아버지를 만나서 다행히 강을 건넌 친구들은 그날 학교에 결석하지 않고 갈 수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이 아버지가 와룡리 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건네주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설아, 느네 아부지 참 멋지제! 팔뚝에 알통도 불끈불끈하고 힘이 장수 같단 말여. 니는 좋겠다 잉?”
아이들의 칭찬을 들으면 설이는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감돌고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철벅철벅 빗길을 걷는 발자국소리가 더욱 경쾌해집니다.
설이 아버지가 얼음이 언 겨울 강을 건네주고 여름 장마 때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네주는 일을 하면서부터 설이는 아이들에게 더욱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군고구마, 김이 솔솔 나는 노오란 찰옥수수. 살이 통통해서 한 번 입에 물면 달콤 새콤한 물이 왈칵 올라오는 주먹만 한 자두, 그리고 좀처럼 구하기 힘든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학용품들도 종종 설이의 손에 들어오곤 합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마을이 뒤집힐 정도로 홍수가 진 것입니다. 강둑이 얕은 마을들이 다 물에 잠기고 집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돼지, 소, 닭 같은 가죽들도 꿀꿀, 음매에, 꼬꼬댁, 소리를 지르면서 콸콸 흘러가는 강물에 어떻게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와룡리 성화당도, 최영감네 빈 집도, 다 흔적이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쩌까이? 어쩌까이?”
사람들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졸이며 탄식을 할 뿐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강물과 물살을 바라보면서 어떤 크고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긴 하는가 보다 잉?”
“그러게말여. 서울서 사람들이 왔다 간 뒤로 와룡리에 재앙이 끊이지 않는다니까!”
며칠 후 물이 다 빠진 뒤에 보니까 허름하게 지은 집들은 다 물에 떠내려가고, 튼튼하게 지은 집들만이 그 형체를 겨우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삼거리 주막 앞에 서있는 느티나무 한그루만이 무서운 홍수의 흔적을 몸에 덕지덕지 간직한 채 푸른 가지를 하늘 위로 곧게 뻗고 맑은 공기를 맘껏 숨 쉬고 있습니다.
“아침에 가보니께 아직도 강물이 사람 키를 넘것드라. 강으로는 못 간 게 저리 읍내로 돌아서 가보자 잉?”
설이 아버지는 홍수 후 일주일 만에 겨우 집안을 정돈해 놓고 설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느티나무 앞에 서있습니다. 돌아서 학교에 가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은 설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설이 아버지는 페달을 힘차게 밟습니다. 싱그러운 바람, 부드러운 손길에 하나가 된 몸을 맡긴 채 부지런히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