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3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10일에 다 읽었으니까 딱 일주일 걸렸다. 천천히 밑줄 그으면서 읽느라고 시간이 꽤 걸린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5살에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체로키족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주인공 이름, little tree)는 소중한 많은 것을 배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경험한 자연을 통해 배운다.
"좋은 것을 이웃과 함께 하라."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치는 게 좋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속이면 도리어 자기 자신이 곤란에 빠지게 된다."
"흥분하면 감각보다 감정이 앞선다."
"이해와 사랑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작은 나무'가 잘못해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야단을 치지 않는다.슬플 때는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둔다. 5살 때 부모님을 잃었을 때 그랬다.
그리고 자연에서 식물이나 동물을 잡을 때도 식량을 위해서만 취하고,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둔다. 더 좋은 번식을 위해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로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두 분은 손자 '작은 나무'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자연에 대해서도 이해와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작은 나무'가 독을 가진 방울뱀한테 물리게 생긴 위기에 처했을 때, 할아버지는 손자 '작은 나무' 얼굴과 방울독뱀 사이에 손을 집어넣음으로써 손자는 살리고 대신 독뱀에 물려 팔에 몸에 독이 퍼져 죽을 뻔한다. 할머니가 민간요법으로 할아버지를 겨우 살려낸다. 그러나 누구도 '작은 나무'를 탓하지 않는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가 할머니 다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책에는 기독교인과 정치가들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할아버지는 물론 '작은 나무'가 경험을 통해 보는 것이 매번 그들에게 손해를 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과장되고 편협되고 배타적이고 비합리적이며 폭력적이어서 그렇다.
또 하나, 바탕에 깔린 생각이 자연의 순환 같은 것이어서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작은 나무'에게도 영향을 준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순환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 일종의 윤회와 정령신앙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외 부분은 어느 부분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참 따뜻한 책이다. '작은 나무'는 정규교육을 받은 것이 없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글을 아는 할머니가 읽어 주고, 또 사전을 조금씩 외우면서 단어공부를 한다.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작은 나무'의 이야기를 자세히 음미하며 읽다 보니 나도 자연인으로 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오려나 싶지만 말이다.
여러 번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하며, 이런 책들이 있어서 코로나19 비상 중에도 너무나 유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책과 그림과 산행과 영화가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닫는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신앙이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체로키족(미국 남동부의 애팔래치아 산맥 남쪽 끝에 살면서 농경과 수렵생활을 한 수렵 인디언. 1838-1839년에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이주당했지만 산속으로 숨거나 달아난 사람들도 있어서 지금은 멀리 떨어진 두 그룹으로 나뉜다. '작은 나무'는 본래의 고향인 테네시주에 머무른 그룹의 자손에 속한다-옮긴이)의 피가 반 섞인 혼혈이고 할머니는 순수 체로키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