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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06. 2023

돈을 빌려 보면

사람이 살면서 돈을 빌리지 않고 자신이 번 돈으로 먹고 쓰고, 저축도 하고, 다른 사람도 도우면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나는 비교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늘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별로 돈이 궁하게는 안 살아보았다. 옆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내 수중에 있는 돈을 주기도 하고, 상품권이나 선물 들어온 게 있으면, 나는 안 써도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밥도 잘 사주고 그랬다.  


중학교1학년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학업과 진로를 책임져 주셨다. 집안이 어렵다고, 남동생들 공부 가르쳐야 한다고, 여자인 나는 큰딸인데도 돈을 벌어와야 한다며, 고등학교도 못 다니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공동학군인 이화여고에 배정되게 하셔서 구제해 주셨다.


필요한 돈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꼭 "돈 없다"라고 한 마디씩 하고는 돈을 제때 안 주어서 울고 학교에 간 적이 많았다. 그래도 며칠 후에 마지못해 돈을 주시고는 그날 저녁에 "너 공부는 시키라는 것인지 하루 동안에 너 가져간 돈보다 더 많이 20만 원어치도 더 팔았다"라고  흐뭇해하셨다. 당시에 엄마는 식당을 운영했는데 하루에 손님 5도 안 오는 날이 많아서 1~2만 원어치 팔기도 어려운 때가 허다하다고 한탄을 하곤 했는데, 하루 20원 어치의 매출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돈 타는 일이 조금씩 더 쉬졌다. 또 1학년 말부터 교목실에서 주는 옥합장학금을 졸업할 때까지 받게 되면서 "학교 그만 다니라"는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부모님의 기대치가 점점 높아져서 나에게 S대 법대를 가라고 요구했다. 거기를 못 가겠거든 대학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의 꿈은 내가 법대를 나와서 판사가 되는 것이었고, 4대 독자 집안의 큰딸이니 만큼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법대에 대한 꿈도 없었고, 또 그렇게 탁월하게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이제나저제나 학교 그만 둘 궁리를 수없이 했다. 그래도 용기가 부족해서 학교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문학에 대한 갈망이 더해져 공부와는 거리가 어졌고 대학도 제때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냥 실력대로 갔다면 서울에 있는 여대 정도는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인데, 부모님의 과잉기대 때문에 대입시험도 못 쳐보고 나는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 무렵 우리 엄마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미아리 고개에 있는 점집을 찾아갔다.  "너 팔자에 대학 갈 운이 있나 없나 보자"는 것이다. 용하다는 점쟁이는 내 팔자에는 대학 갈 운이 아주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좀 늦긴 했지만 나는 대학을 나오고도 대학원을 두 군데에서나 했으니 그 점쟁이의 말은 전혀 맞지 않은 셈이 되었다.


아버지의 소원이 S대학이었으니 내가 결혼 대상자로 만나는 사람이 인물도 잘 생기고 S대학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으니 무조건 OK였다. 나도 그랬다. 그는 성품도 좋았고 또 졸업반인 4학년 말에는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직업이고, 그래서 가장 인기가 있는 증권회사에, 그것도 압구정지점에 취직이 되었다. 그가 관리하는 고객 수만도 동료들 중에 최고 수준이었다. 그만큼 그는 돈을 잘 벌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딜레마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번 돈은 주변사람들에게는 큰 이익을 주었지만, 사람 좋은 우리 남편은 부모님께, 시아주버니에게, 시누이들에게 다 퍼주고, 정작 자기 것은 챙기지 않았다. 너무 자신이 만만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라가 경제위기에 처하자 주식시장이 바닥을 쳤고, 우리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도 나는 일이 있어서 돈 궁한 줄은 모르고 살았다. 영어사업을 시작했고, 뒤이어서 아이들 논술도 지도하고 있어서 돈벌이 좋았다. 가르치는 아이들 실력이 늘어나자 학부모님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그야말로 해마다  최고의 명문대 합격을 자랑하였다. S대는 물론이거니와 종종  H대 같은 대학 의대 수석도 나왔다. 그러니 줄 서서 나에게 논술을 배우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골라가면서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런데 IMF 경제위기에 남편이 실직을 하고 그것이 장기화되면서 사는 집과 살림을 점점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쯤이었다. 나는 고3 때 서원한 목회자가 되려고 신대원진학을 준비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물질 시험이 가장 먼저 왔고, 그다음은 건강, 그다음은 관계 시험이었다. 평신도일 때는 제법 능력 있는 리더에 속한다고 자부할 수 있던 나인데도, 목회자가 되고부터는 그 시험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돌아보니 우상(남묘호랑객교)을 섬기는 가정, 안 믿는 남자와의 결혼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최고 학벌을 원하던 아버지의 소원풀이를 위해 한 나의 결혼, 학벌을 보고 외모를 보고 돈을 본 나의 선택, 무엇보다 믿지 않는 사람과의 불신결혼, 그때부터 돈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주로 친정엄마의 자원에 의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부채는 자꾸만 늘어갔다. 마는 우리 남편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으면서 주식에 투자하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정엄마는 점점 부자가 되어가는데 우리는 점점 가난해져 갔다.(친정엄마는 집이 세 채로 불어나게 되었고, 당시에 한 달에 받는 월세만도 200만 원이 넘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다가 천주교로 개종한 친정엄마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데, 어떻게 해야 돈을 불리는 줄을 안다. 그런데 돈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냉정하다. 돈문제라면 부모고 형제고 자식이고 없다.


돈을 빌려 보면 자신이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돈을 빌려 달라고 얘기하면 사람관계가 그냥 끊어지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많이 도와주었던 사람이라도 상관이 없다. 그저 '돈 빌려달라'는 그 한 마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자신이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먼저 관계를 끊는 경우이다.


돌을 빌려 보면 빌려주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얘기해서 입장이 더 곤란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다면 나의 평소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고나 할까?


돈을 빌려 보면 "너와 나 사이에 그 돈  안 갚아도 되니 잘 쓰라"라고 하는 이가 있다. "빌린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없고 더군다나 갚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친구, 그 액수도 선뜻 내주기에는 쉽지 않은 금액이다. 이런 친구가 많다면 제법 괜찮은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돈을 빌려보면 빌리고 쉽게 갚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을 때, 독촉을 해서 기어이 돈을 받아 내는 이가 있는 반면, "그 돈은 내게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천천히 갚아도 된다"라고 하는 이가 있고, 아예  "갚지 않아도 되니 준 것으로 하라"는 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돈을 빌려준 쪽도 다급한 일이 생긴 경우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십중팔구는 관계가 깨어질 수 있다. 성경에서 같은 기독교인끼리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일을 대비해서 한 말이 아닌가 싶다. 돈을 빌려줄 때는 빌려간 사람이 갚지 않아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만큼 '준다'라고 생각하고 '빌려주라"라고 한다. 그래도 돈을 빌려간 사람이 형편이 풀리면 반드시 돈을 갚을 것이고, 잘 기다려준 사람에게 원금과 함께 고마움을 표시할 것이다. 돈을 빌려주고 관계가 더 좋아진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돈독한 관계가 형성된다. 돈을 빌린 사람은 고마워할 것이고, 형편이 풀리면 빌린 돈은 물론이거니와 어려울 때 받은 사랑 때문에 돈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갚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돈이 얽히면 사람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성경에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능하면 돈을 빌리지 않아야 하고, 빌렸으면 곧 갚아야 하고, 못 갚으면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돈이란 그런 것이다. 물질만능시대에 돈의 덫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어려우면 그 덫에 걸릴 수밖에 없다. 새가 그물에서 빠져나오듯이 돈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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