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게 왜 그렇게 좋았을까?

by 서순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완등을 했다. 2019년 9월 22일(토)에 강화도 마니산에서 제1좌를 시작해서 2022년 10월 22일(토)에 포항 내연산에서 제100좌를 찍었다. 딱 3년 1개월(37개월) 걸렸다.

'느리게 천천히 꾸준히'라는 모토 아래 산행을 다시 시작한 지 벌써 5년차다. 100대 명산을 찍기 시작한 지는 내가 산을 다시 타기 시작하고도 한참을 지나서이다.
나는 벌써 20대 대학시절에 산행을 꽤나 많이 했다. 거의 한 10여 년은 산을 탔지 싶다. 결혼을 하고도 계속 산을 탔다. 울 남편 대학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정기적으로 산을 탔다. 왜 그렇게 산을 타는 게 좋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거슬러 거슬러 가보면 내가 걷는 걸 좋아하는 것은 진량국민학교(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기 전에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시절로 올라간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1년 간을 걸어서 통학했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약 4km이고, 중학교까지는 약 7km 정도 되는 거리를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학교에 다닌 것이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하염없이 걷던 시골길 그것이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시발점이 된 것 같다.
어린 시절 전기도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시골에 살아서 나는 걷는 게 일상이 된 세월을 살았다.
그때는 몸이 꽤 허약해서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다가 쓰러진 기억도 있다.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오랜 시간 땡볕에 서서 교장선생님 훈시를 듣고 있노라면 빈혈이 있었던 나는 견디지 못하고 그만 현기증이 나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약한 내가 건강을 회복한 것은 꾸준한 걷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서울로 이사온 뒤에도 또 걸어서 통학을 했다. 영광여중에서 전힉온 도봉여중(지금은 남녀공학이 되었다)은 집에서 걸어서 40여 분 정도 걸렸지만 거리상으로는 약 4km가 된다.
그리고 여고시절, 서울 강북구 번동에 살고 있던 나는 학교가 멀어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그런데 버스만 거의 1시간 이상 타야 했다. 서울시청 앞 남대문정류장에 내려서 또 부지런히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뛰어서 이화여고에 다녔다. 약1.5km, 30여 분 거리이다.
이런 걷기 운동이 내게는 이미 체질회되어 있어서 나에게는 걷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산을 타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그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무조건 걷는 게 좋다. 그것도 누구랑 같이 걷는 것보다도 나 혼자서 고요히 사색하며 걷는 게 더 좋다.
지금도 나는 거의 혼자 산행 신청을 해서 산에 간다. 물론 산악회에서 가기 때문에 산행 신청 인원에 따라서 28인승부터 36인승, 40인승까지 다양한 버스에 타서 그때그때 함께하는 인원이 조금씩 다르긴 하다.
산에서는 보폭이 맞는 사람과는 누구라도 일일 산행 짝꿍이 된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걷다가 사진도 서로 찍어주다가 밥이나 간식도 같이 먹는다. 그러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또 인사도 없이 헤어진다. 그래도 추억의 창고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산행을 계속하고 싶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근교 광교산이나 청계산을 올라도 좋겠다. 아니 아주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면 팔달산이나 수원화성 성곽길, 서호공원과 꽃뫼공원, 수원청소년문화공원 등 걷기 좋은 길들을 걸어도 좋겠다.
나는 아마도 걷다가, 아니 걷고 집에 와서 씻고 고요히 자다가, 숨을 거둘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마지막 순간에 걷는 게 왜 그렇게 좋았을까? 걸을 수 있어서 참 행복했노라고 고백하며 저 영원한 새로운 세상 하늘 나라로 옮겨갈 수 있으리라. 그곳에서도 걷는 게 있을까? 아무래도 날아다니는 건 아닐까? 걷는 것은 이 땅에서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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