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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23. 2023

승리도 패배도 아닌 결론, 관부재판

 영화 《허스토리》

달에 한번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특권일까? 혜택일까? 나는 핸드폰 멤버십 포인트로 영화를 본다. 약간 귀차니즘이 발동해서는 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영화를 보러 다. 이번 에도 자칫하면 놓치겠다 싶어 부리나케 다.


요즘 개봉한 영화에다 예매순위와 인기영화를 검색해보니 《마녀》, 《탐정》, 《허스토리》가 나온다. 무얼 볼까 살펴보다가 '6월이니까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영화를 보자' 하고 예매를 한다. 보고 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러면서 평소 좋아하는 영화의 종류도, 영화와 역사를 보는 시각도, 사건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영화보러 는 길, 재개발구역에 늘 대문을 덮으며 활짝 핀 능소화가 넘 예쁘고, 키가 큰 오동나무도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는데, 이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 집들이 헐리면 저 꽃과 나무도 다 없어질 테니까.


내 놀이 중 인증샷은 필수라서 영화관 《허스토리》 포스터 앞에서 셀카놀이하고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허스토리》 영화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데, 일본 시모노세키의 하관과 부산을 오가며 한 재판이라서 줄여서 '관부재판'이라고 불린단다.   


여행사 대표인 문여사(김희애)는 제3자로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이 되어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다. 결국 10여 년에 걸친 재판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결론이 났지만, 점점 여론과 대중의 관심을 갖게 되고, 일본 정부로부터도 어느 정도는 도덕적 책임과 양심에 자각과 반향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2017년 마지막 관부재판의 원고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더 많이 흐른 후 역사는 과거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위안부 사건은 과거의 일이라서 머나먼 이야기같지만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지배국인 일본에 강압적으로 당한 일이라서 위안부 당사자들에게나 우리나라에게나 깊은 상처를 남다.


어찌 이런 일 뿐이겠는가! 사람들이 사는 형국을 보면 참으로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고도 잘 살아남아 씩씩하게 살아가는 걸 보게 된다.

"세상은 찰나인데 목숨은 질기다!"

영화를 본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렇다.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만년소녀인 김희애가 주연으로 나와 흥미롭게 보았다. 소녀가 아닌 당찬 여성의 모습으로 나온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과 상처가 그녀를 통해 보여지면서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문제의식은 짚어가되 비교적 깊이있게 다뤄진 점이 좋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2세 변호사들의 활약과 후원회에도 박수를 보낸다. 좋은 영화를 잘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점심을 넘겨 나갔더니 저녁무렵이라 배가  촐촐해서는 <진주남강>에서 물냉면 한그릇 사먹고, 재래시장에 들려 이번 주 산행에 필요한 소품 몇 가지 사고, 장 보고 집으로 향한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수원천 물빛이 짙어지고 물오리들이 푸드덕거리며 날개를 턴다. 나무들은 가지를 늘어뜨리고 똑똑 물방울을 떨군다.  영화는 가슴이 아렸지만 자연의 즈넉한  운치가 있다.

영화 《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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