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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r 10. 2023

'동주'의 부끄러움과 사랑

영화 《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전문)



"나는 부끄러워서

서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동주의 마지막 말

시대가 그리도 악한데

시를 써서 부끄럽다는 동주

그리고 꽃다운 청춘의 죽음!


친구 몽규는 신념대로

시대를 바꿔보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만 잡혀서 감옥에 갇히고 마는데,

더 처절하게 살아내지 못하고

사명을 접어야 함을 절규하며

'합법적인 절차'라는 죄몫에 서명을 다.


동주는 그에 동참하지도 못하고 시를 썼는데

그 시가 죄가 되어 잡혀서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런데 동주는 그림자처럼 시만 쓴 게 부끄러워서

그 죄몫에 서명하지 않죽음을 선택한다.


이토록 처절한 시를

지금 나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제야 비로소 '서시"가

가슴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던 날!


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를 쓰고

말씀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씀을 읽고

그러는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

.

.

.

.

.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시대를 그토록 아파하면서도 '소년'이었던 동주는 '사랑' 시도 참 많이 썼다. 주의 순이는 늘 떠나고 있다. 고백하지 못하는 첫사랑이고, 이루지 못해 아픈 사랑이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윤동주, <눈 오는 지도> 전문)


영화 《동주》를 보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시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이 더 많이 사랑스럽다.

영화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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