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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Apr 18. 2023

나는 그저 한 줌 흙이 되리라

서울 아용망(아차산+용마산+망우산) 1일3산

난 토요일은 비소식이 있어서 산행을 쉬고 오늘 아차산+용마산+망우산 1일3산을 걸어볼 거다. 아차산은 장신대 바로 뒷산인데, 벚꽃 예쁘게 피었을 때 워커힐까지만 가보고 한 번도 못 올라보았다.


주로 능선을 타고 한강과 주변 조망을 하면서 걷는다고 하는데, 날씨가 조금 흐려서 어떨지 모르겠다. 날씨는 조금 선선해서 걷기는 좋을 것이다.


요즘 벚꽃과 진달래는 거의 다 지고 철쭉이 막 어나고 있어서 산행하면서 볼거리가 쏠쏠하다고 한다.


참석 인원은 모두 5명이다. 남자 2명, 여자 3명, 인테리어 대장님 리딩이다. 다른 산우님들은 한 번도 같이 산행해보지 못한 이들이라 아직 별명만 보고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산에서는 누구나 친구이니까 처음 만나도 금방 친해진다.


아차산에서는 유물이 많이 발견된 모양이다. 군데군데 유물 발견지라는 표시가 있다.


아용망 산행은 편안한 능선길에 한강과 서울시를 계속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아직 겹벚꽃이 피어 있는 곳이 있어서 담아본다.


여산우 님 두 분과 나는 1보루로 가본다. 바로 아래 아차산 해맞이공원이 보인다.


인테리어 대장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데크길 올라왔으면 왼쪽 길이 아니고 오른쪽 길로 오란다.

"네. 알았어요."

대답은 그렇게 해도 기왕 오른 거 제1보루에서 한강을 배경으로 서본다. 미세먼지만 아니면 시원스럽게 보일 한강 조망이 영 아쉽다.


제3보루쯤 갔을 때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바람이 조금 차게 불어서 아늑한 장소를 찾아 빙 둘레를 돈다. 한강이 보이는 숲 속에 자리를 잡는다.


새로 오신 여산우 님 두 분은 김밥, 낑깡, 떡, 일월 님은 미나리쇠고기전, 나는 호박영양떡, 약밥, 오렌지, 인테리어 대장님은 쌀국수, 커피를 가져오셨다. 꽃보자기 밥상에 펼쳐 놓으니 한 상 가득이다. 여유 있게 앉아 점심식탁교제를 한다.


제3보루 지나 아차산 정상 찍고 제4보루를 지나 이제 용마산으로 들어선다.


아,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핸드폰이 없다. 아까 제4보루에서 겉옷을 벗을 때 아마도  벗어놓았던 난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그냥 내려온 듯하다.


배낭을 길에 벗어놓고 급하게 다시 돌아가본다. 오름길 데크길도 힘든 줄 모르고 헐레벌떡 제4보루로 가보니 핸드폰이 나무 난간 위에 그대로 있다.

"휴! 다행이다."


인테리어 대장님은 여산우 님 두 분과 앞서가고 일월 님이 내 배낭을 지키고 있다.

"고마워요."

그리고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장소 아차 긴고랑길(※) 안내판에 감사하며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선두팀을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재게 내딛는다.


용마산 정상 용마봉에서 개인사진과 단체사진을 찍는다. 여산우 님 두 분은 개인 사진을 안 찍는다 해서 남산우 님 두 분과 나만 찍는다.


산길에서 만나는 라일락, 연달래, 하얀 철쭉, 정상의 사과나무꽃, 복숭아꽃이 예쁘다. 꽃 너머로 서울 시내도 내려다보인다.


아용망 산행길에 전망대가 꽤 있는데 서울 시내와 주변산과 다리가 조망이 된다. 왼쪽으로는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천마산에서 백봉산, 예빈산, 남한산성까지 보인다.


날씨만 좋았으면 산 봉우리들과 한강 다리들, 그리고 서울 시내의 모습이 빚어내는 풍경이 장관일 듯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는데, 조금 답답하다. 꼭 풍경의 라인선을 사인펜으로 그리고 싶다고나 할까? 뿌연 미세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싶다고나 할까?


지방산을 가면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나은 편이다. 내가 원정산행을 더 자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맑고 깨끗한 풍경을 보기 위해서랄까?


망우산으로 가기 위해 용마봉에서 다시 내려온다. 보랏빛 꽃봉오리를 만난다. 꽃보다 더 예쁜 라일락 꽃봉오리다.


아차산 긴고랑길 안내가 있는 곳까지 한참을 내려온다. 그런데 인테리어 대장님이 아무래도 알바를 한 것 같다고 다시 올라가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여기 긴고랑길 안내판에서 두고 온 핸드폰 찾으러 제4보루까지, 망우산 가는 길 찾으러 전망대까지, 총 2번 데크길 왕복을 한다. 아차산 긴고랑길 안내판이 잊힐 리가 없다.


그런데, 긴고랑길은 어떤 길인가? 안내판을 읽어볼 새도 없이 왔다 갔다 바쁘다. 사진을 찍어 왔으니 기록을 남기며 이제야 찬찬히 읽어본다. 사진을 많이 찍어 좋은 점이다.


용마산에서 망우산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570개 깔딱 고개 데크길이 있다. 망우산 쪽에서 올라오려면 숨 깨나 가쁘겠다. 데크길이라 내려가는 건 아주 쉽다.


용마산에서 내려오니 도로길이 나온다. 일월 님 얘기가 실은 인테리어 대장님이 용마산에서 바로 망우산으로 이어지게 산길로 걸으려고 했는데, 산에 무덤이 너무 많아 우회를 한 거란다.


도로길에 철쭉이 만발했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다. 꽃은 예쁜데 길이 별로라서 나는 꽃 사진만 찍고 부지런히 걸어간다.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었다. 두 번이나 지체한 시간이 있어서 양원역까지 내려가면 5시가 넘을 것 같다고 한다.


망우산 들어서니 무덤들의 천국이다. 산이 온통 무덤 천지다. 무덤들도 다양하다. 무덤 가에 멋진 나무를 심기도 하고 다양한 꽃을 심어놓기도 했다. 어떤 무덤 위에는 돌양지꽃이 수북이 피어난 곳도 있다. 철쭉을 사방 네 귀퉁이에 심어놓은 곳도 있다. 산길이 차암 예쁜데 무덤들이 너무 많아 아쉽다. 오늘은 이래저래 아쉬운 게 많은 산행이다.


무덤 중에서 이인성 화가의 무덤을 사진에 담는다.

"요절을 했네."

인테리어 대장님이 언제 비문 연표를 읽었는지 한 마디 하신다. 1912~1950으로 표기되어 있다. 38세에 요절한 것이다.


나는 <그림에 나를 담다>(이광표 지음, 현암사)에서 자화상을 그린 화가들 중 이인성 화가가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화가로 기록되어 마음이 아팠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슬픔 가운데서 자신의 모습은 늘 눈을 감은 채로 그렸다.


그런데 그의 죽음 역시 만취해서 경찰과 다투던 중 총기 오발로 갑작스럽게 다가왔다고 하니 이런 기구한 인생이 또 있을까 싶다.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고 상을 받은 후에 일본유학도 하고 이대 교수로 재직도 하지만 '조선의 귀재, 천재화가'로 불리던 이인성은 겨우 38세를 살고 이 땅을 떠나고 말았다.


성경에도 보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고'라는 말이 있는데, 무덤이 많은 망우산을 걸으며 생각이 많다. 짧고 굵게 사는 것, 길고 가늘게 사는 것, 그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전자 쪽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벌써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고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으니 나는 현재 후자 쪽인 셈이다.


하산하니 망우역사문화공원이라는 이름표가 우릴 맞는다. 무덤이 많은 만큼 명절에는 아주 붐비는 장소가 되겠다.


"나는 그저 한 줌 흙이 되리라. 무덤을 만들지 말라.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산에 뿌려달라. 날짜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아용망 산행 마무리를 한다.


※아차산 긴고랑길 :

아차산 긴고랑길에서는 봄의 전령 '매화꽃'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긴고랑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아차산 능선길에 올라서면 보루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볼 수 있다.

철쭉
아차산 제4보루 유물 출토지
라일락꽃봉오리
초록 숲길
한강 조망
롯데월드 조망
복숭아꽃, 사과꽃
이인성 화가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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