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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n 10. 2023

사는 동안은 연애하는 것처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화 초반에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나온다.


강원도 횡성의 작은 마을에 강이 흐르고 있다.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를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른다.


처음에 두 노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인가 싶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인가? 어째서 부부를 나타내는 '여보'나 '임자'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것까?


만년소녀 89세 강계열 할머니, 만년소년이자 로맨티시스트인 98세 조병만 할아버지,

두 사람은 고운 한복을 커플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은 연애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지 않나 싶다.  서로를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며 존중해 주는 것이다. 할머니가 14살에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왔는데 17살까지 몸을 만지지 않아서 할머니가 먼저 껴안았다고 한다. 그 첫 감정을 언제까지나 느끼고 싶었을까?


봄에는 이쁜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춤을 춘다. 여름에는 에서 물을 튀기며 논다. 가을에는 낙엽을 쓸다 말고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을 친다. 겨울에는 하얀 눈을 서로 먹여주고 눈을 던지며 눈싸움을 한다. 머리가 하얀 이들 노부부에게는  날마다  신혼이다. 76년째 연애를 하며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다.


자녀들은 자라 출가해서 모두 도시로 떠나고 생일 같은 기념일이나 명절에나 다니러 온다.


노부부는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한 마리는 작아서 '꼬마', 또 한 마리는 공짜로 얻어서 '공순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죽는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할아버지의 기력은 급격히 어진다. 기이 심해 밤잠을 설몸이 자꾸만 말라간다. 병원에 가도 나이가 너무 많아 약도 없다고 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할아버지의 밭은기침소리 듣고, 할머니는 혼자 남은 강아지 공순이 바라보며,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할아버지의 낡은 옷을 먼저 아궁이에 태운다.


할머니는 집 앞의 강가에 앉아 말없이 강물을 쳐다보곤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자주  강이다. 이제 얼마 후면 할아버지가 먼저 건너가고, 자신은 홀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혼자 남은 강아지 공순이는 새끼를 6마리 낳는다. 수컷 3마리, 암컷 3마리이다. 부분은 할머니가 너무 외롭지 않게 묘사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머니는 할아버지의 유품을 태우면서 먼저 간 자녀들 6명의 내복도 함께 태운다. 장에서 미리 새것으로 사다 놓은 것이다.

"애들 만나거든 입혀요."


영화 끝부분에 무덤가에서 슬피 울고 있는 할머니가 나온다.


<백발의 연인>으로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노부부의 이야기를 독립영화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두 노부부의 사랑은 귀하고 귀한 사랑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랑이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 사랑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니 울 할머니 생각이 난다. 나이 30세에 청상이 되어 임종하시던 86세까지 56년을 혼자 사셨다. 울 할머니는 키도 크고 예쁘고, 심성도 곱고, 부지런하셨다. 주변에서 눈길을 주는 뭇 남정네 들도 많았단다. 시 시집을 갔으면 훨씬 부유하게 고생도 안 하고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우리 남편 같은 인물은 없더라."

늘 하시던 말씀이다.


나와 함께 사는 배우자가 이만큼 예쁘고 멋지면 참 좋을 것 같다. 누구나 다 사랑해서 결혼하면 이 노부부처럼 아기자기하게 살다가 백년해로하면 금상첨화겠다. 혹여 혼자되더라도 울 할머니처럼 그 사랑을 잊지 못해 두고두고 기억하며 살 수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이유도 다양한, 이혼이 흔한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실화, 노부부의 찐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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